이야기가 있는 충북100경 - 무심천
이야기가 있는 충북100경 - 무심천
  • 중부매일
  • 승인 2017.04.04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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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쓸쓸할 때 강물은 더욱 빛난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고 했던가. 물은 선하고 맑으며 기진한 삶의 축복이다. 은빛으로 출렁이는 호숫가에서, 만화방창 꽃들의 무덤에서, 녹음 우거진 숲속에서 생명의 질기고도 진한 신화를 발견한다. 그 길을 걸으며 아픔을 보듬고 삶과 존재의 이유를 찾는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마음이 쓸쓸할 때 길을 나선다.

무심천에도 어느새 봄이 속삭인다. 북풍한설에 얼어붙은 마음을 보듬어 주듯 따스한 봄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여기저기서 꽃망울 떠지는 소리로 가득하고 연분홍 꽃잎과 능수버들 흩날리는데 여인들이 쪼그려 앉아 봄나물을 캔다. 어제도 캐 갔건만 자연은 오늘도 성실히 채워 두었다. 허리 구부리고 진한 땀방울 흘린 사람에게만 먹을 것을 허락하는 것이다.

무심천은 가덕면 내암리에서 발원해 미호천까지 34.5㎞를 쉼 없이 흐른다. 모든 문명은 물길을 중심으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계곡에서, 마을에서, 논과 밭에서 수많은 실개천이 모이고 모여 무심천으로, 까치내로, 금강으로, 망망대해로 흘러간다. 까치내는 무심천과 미호천의 합류점이다. 서로 다른 것들이 모이면 거칠게 저항하지만 금새 하나가 돼 새로운 길을 나선다. 부드러운 곡선, 완만한 흐름, 쏟아지는 물살, 붉게 빛나는 석양, 더디게 흐르되 결코 되돌아보지 않는 대지의 노래…. 어느 것 하나 거짓이 없으니 어린 날의 좁고 단순한 세상이 갑자기 넓어지면서 새 살 돋는 신비를 맛본다.

일신우일신(新又日新).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며 생명을 찬미한다. 그 정직한 마음을 담아 풍요를 약속한다. 하여 무심천은 천오백년 청주의 신화와 전설, 기진했던 삶과 영광을 모두 품고 있다.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돌다리인 남석교는 성안길 땅 속에서 청주를 지키고 있다. 삶의 애달픔을 담은 청주아리랑도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버들피리와 호드기 낭창낭창한 소리는 고단했던 노정을 어루만져 준다. 천연기념물 미호종개와 수달을 비롯해 얼룩동사리 고라니 물까마귀 두루미 등 생태의 낙원이다.

사뇌사와 흥덕사를 비롯한 고려 최고의 사찰은 무심천변에 위치해 있었다. 영원한 생명을 갈망하는 인간의 염원과 흐르는 강물은 목가적이지만 수행이나 다름없다. 소로리볍씨도 이 일대에서 출토되었다. 17000년 전부터 우리 조상들은 이곳에서 농경과 수렵생활을 한 것이니 내게도 흐르는 물살처럼 유목민의 정신이 깃들어 있지 않을까. 더 늦기 전에 무심천 어딘가에 억겁의 삶과 문화의 여정을 담은 공간을 만들어야겠다. 대지의 모성애와 생태적 순환성과 흐르는 물살의 여백을 즐길 수 있는 곳, 그곳에서 똘레랑스(관용)와 노마디즘(인식의 확장)을 배우고 생명의 모항으로 가꾸면 좋겠다.

부드러운 것, 여성적인 것은 우리를 감동시키고 안식을 준다. 무심천이 그러하고 주변의 산과 들과 사람들의 풍경이 그러하다. 그곳은 천오백년 꿈이 서려 있어 더욱 풍요롭고 벅차다.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무심천을 서성거려라. 흐르는 강물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가던 길 마저 가면 된다며 미소로 화답한다. 그러니 이곳에 마음의 징검다리 하나 놓자. 삿된 욕망 부려놓고 가슴 설레는 징검다리를 건너자.

사진 / 홍대기(사진작가) 글 / 변광섭(에세이스트·컬처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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