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고려, 조선시대에 이 땅에서 살았던 충북인의 옛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개화기, 서양 선교사에 의해 사진기가 도입된 당시 부터는 우리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그 이전의 모습은 여전히 궁금증으로 남아 있다.
 사진기가 없던 시대 우리의 모습은 고분 출토 두개골, 초상화, 목각 또는 소조(塑彫)인물상, 그리고 기와에 새겨진 얼굴무늬(人面文)를 통해 유추하는 수 밖에 없다.
 충북은 삼국의 접경지대였던 까닭에 옛 절터 등지에서 삼국의 와당(瓦當)이 모두 출토된다. 신라의 지배기간이 가장 길었으므로 신라계열의 기와가 주종을 이루지만 백제적인 요소나 고구려 계열의 와당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와당에 대한 일반의 관심은 거의 없었다. 절터나 논뚝 밭뚝에 무심히 방치되었던 와당, 여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수집에 나섰으나 민가에서는 이를 놋그릇 닦는데 쓰는 정도였다. 옛날 기와를 곱게 갈아서 놋그릇 방자유기를 닦으면 윤이 반짝반짝 났다. 조상의 숨결이 잔뜩 배인 문화 유산이 한때는 엉뚱하게도 자연 세제로 쓰였던 것이다.
 기와중에서도 여러 무늬가 새겨진 곳은 마무리 부분의 막새 기와와 지붕 용마루 양끝에 얹어진 치미 등에 집중되어 있다. 막새기와는 수키와 마무리 부분의 수막새와 암키와의 암막새로 다시 나뉘어진다. 수막새는 대개 원형이다. 그 둥근 테두리 안에는 여러 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가장 많은 무늬가 연꽃무늬(蓮花文)이고 그다음으로 해무리 무늬, 귀신 눈깔 누늬, 사람 얼굴 무늬, 풀잎 무늬(唐草文:주로 암막새에 있음)등이 있는데 모두가 악귀의 접근을 막는 주술적 의미가 담겨 있다.
 충주 대원사지(미륵리사지)에서는 2점의 사람 얼굴무늬 수막새가 출토된 바 있다. 지름 11.7cm의 인면문 수막새는 연꽃으로 주변을 돌렸고 자방(子房)에 해당하는 중심 부분에 얼굴 무늬를 새긴 점이 특징이다. 눈, 코, 입을 돋을 새김으로 표현했는데 특히 코 부분이 삼각형으로 강조되었다.
 다른 인면문 수막새도 돋을 새김을 한 점은 마찬가지이나 눈썹, 눈, 코, 입이 비슷한 비중으로 두툼하게 처리되었다. 충북인의 기질을 말해주기라도 하듯 무뚜뚝하면서도 어리숙한 표정이다.
 청주지검장을 역임했던 유창종 서울지검장이 70년대 말, 충주지역에서 수집하여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조선시대 수막새의 얼굴 표정은 충북인의 옛 모습을 대변해 주는듯 하다. 두툼한 코 사이로 치켜 뜬 눈이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윗 입술과 아랫 입술 사이로는 치아가 상징적으로 표현돼 있다. U자 형으로 벌어진 입은 웃을듯 말듯 소탈한 표정이다.
 마치 현대미술을 보듯 얼굴 생김새의 특징만을 모아 상징적으로 굵게 처리한 점이 돋보인다. 시대는 떨어지지만 가히 ''신라인의 미소''로 통하는 경주 영묘사(靈妙寺) 출토 신라 와당에 견줄만한 ''충북인의 미소''다. 찡그린 것인지 웃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얼굴모습은 함부로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충북인의 기질을 형상화 한듯 하다.

키워드

#연재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