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라 소상공인] 23. 73세의 '율량동 이발사'

청주시 율량동 덕성초등학교 정문 입구에 위치한 '덕성이용원'은 50년간 한 자리를 지켜왔다. 빛바랜 간판이 50년 세월의 흔적을 말해준다. / 김용수

[중부매일 김미정 기자] 청주에는 57년간 가위를 잡아온 73세 '율량동 이발사'가 있다. 청주시 율량동 덕성초등학교 정문 입구에 위치한 '덕성이용원'의 김승경 사장.

색이 바랜 옛 간판이 눈에 띄는 '덕성이용원'의 미닫이문을 천천히 열고 들어가면, 흰 가운을 입은 김승경 사장이 손님을 맞이한다. 가게 안은 시간이 멈춘 듯, 옛 이발소의 풍경이 펼쳐져있다.

오래된 이발용 의자 세 개와 세면용 싱크대 하나, 세탁기 하나, 연탄난로, 플라스틱 수건걸이, 가위 거치대 등이 50년 세월의 흔적을 보여준다.

"아침 7시에 문 여는데도 손님이 먼저 와있는 경우가 있어. 노인네들이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새벽 6시에 오겠다고 예약하는 이들도 있어. 내가 맞춰줘야지 어쩌겠어."

가게는 매일 아침 7시에 문을 열어 오후 4시에 닫는다. 단골들이 노년층이라 그들의 생활에 맞춘 것이다.

57년간 가위질을 하며 살아온 '덕성이용원' 김승경 이발사가 손님의 머리를 만지고 있다. 50년간 한 자리를 지켜온 '덕성이용원'은 어르신들의 오랜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며 단골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 김용수

이발일은 16살에 서울에서 시작했다. 당시 가정형편은 넉넉치 않고 기술을 배워두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이후 기술을 익혀 청주로 내려와 66년에 이용사 자격증을 땄고, 지금의 자리에서 50년간 한 자리를 지켰다.

"단골들이 다 친구들이지. 근데 세상 떠난 단골들이 많아. 이 동네 사람들도 몇 안 남았어."(김승경)

덕성이용원의 단골은 대부분 70대다. '단골손님'이라기보다는 '오랜 친구'에 가깝다. 덕성이용원의 나이가 50을 넘은만큼 단골들도 어느덧 70~8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그들의 머리를 다듬어주면서 김 사장은 켜켜이 쌓인 '세월의 흔적'을 지우고, 면도를 해주면서 '나이의 주름살'을 펴준다.

김승경 이발사가 머리손질을 마친뒤 능숙한 솜씨로 면도를 하고 있다. 면도 브러시에 비누거품을 내 얼굴에 바른뒤 면도칼로 면도를 하고 있다. / 김용수

한 단골이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왔다. 손님이 오자 김 사장은 흰 가운을 챙겨 차려입는다. 이어 안경을 쓰고, 커다란 수건을 손님의 목에 두른 뒤 컷트가운을 입힌다. 그리고는 손때 묻은 가위로 머리를 깎기 시작했다.

"머리를 만질 때에는 꼭 흰 가운을 입어요. 옛날부터 버릇이 돼서…"(김승경)

제천에서 청주에 온지 15년 됐다는 한 70대 단골은 15년동안 덕성이용원에서만 이발을 해왔단다.

"여기가 좋은 점이유? 머리 잘 깎아주고, 얘기도 잘 해주고, 머리에 면도 하면 깔끔해지니까 기분좋지. 나는 여기만 와."(70대 단골)

이발과 면도, 머리감기, 마무리까지는 꼬박 40분이 걸렸다. 면도는 전통방식을 고수한다. 면도브러시로 비누거품을 내 얼굴 전체에 바른뒤 면도칼로 조심스럽게 밀어낸다.

"여기가 사랑방이지. 머리도 하고, 얘기도 하고, 쉬었다가 가는 거지. 추우나 더우나 언제 와도 변함없이 받아주니까 좋지."(73세 단골)

사진 / 김용수

김 사장과 '해방둥이 동갑내기'라고 소개한 이 73세 단골은 머리를 하지 않는 날에도 이곳을 찾아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덕성이용원은 어르신들의 편안한 '사랑방'이다. 마땅히 갈 곳이 없는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말벗이 되고 세상사는 얘기를 늘어놓는 '사랑방'이다. 요즘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치얘기도 심심찮게 나눈다.

이발소 라고 남자들만 이용할까? 덕성이용원에는 '여자'들도 찾아온다.

"여긴 '할머니 손님들'도 있어. 젊은 얘들은 안 오지만, 나이먹은 이들은 남자나 여자나 다 오지."

덕성이용원 가게 안에는 공중전화기가 있다. 김 이발사는 이 공중전화로 지인들과 연락을 취하고 있다. / 김용수

시간이 멈춰있는 공간답게, 가게 안에는 오래된 공중전화기 한 대가 눈에 띈다. 공중전화 보기가 쉽지 않은 요즘, 반갑고 정겹다.

"전화할 일 있으면 이 공중전화로 하고, 저 전화로 전화받지. 한 40년 됐어. 핸드폰 안 쓴지가. 이 공중전화번호도 아는 사람들만 알지."

가게 천장 한 켠에 벌집 수십통이 매달려 있는 풍경도 흥미롭다. 이발소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지만 이마저도 정겹다.

김승경 이발사의 취미는 벌집수집이다. 이발소 천장에 그동안 수집한 벌집 수십통이 매달려 있다./김용수

"이게 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어. 그래서 사람들 벌집 구경하라고 걸어놓았지. 꿀벌은 집이 없고, 말벌이랑 일벌들이 만들어놓은 벌집이야."

김 사장의 유일한 취미는 벌통 수집. 가게가 쉬는 매주 화요일에 산에 다니면서 벌통을 모아왔다. 벌써 20년이나 됐다.


앞으로 계획은 어떨까.

"앞으로 계획? 그런 거 없어. 확장할 생각도, 이전할 마음도 없어. 간판도, 가게 내부도 지금 그대로 다 둘 거야."

"지금 모습 그대로를 지키고 싶다"는 덕성이용원 김승경 사장은 오늘도 '시간'을, '세월'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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