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이 사진은 해당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자료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오늘은 어느 회사 한 부서의 과장 퇴임 송별을 위한 만찬이 있는 날이다. 10명의 발길이 인근 삼겹살집으로 향했다. 구석진 방에 들어서자, 신임 과장은 퇴임 과장이나 후배들 의견을 묻지도 않은 채 술을 주문한다. "사장님, 소주와 맥주 좀 주세요. 소주잔 하나와 맥주 컵 10개도 주세요" 이쯤 되면 뒤로 풀어질 내용이 무엇인가를 술을 마신 적이 있거나 그런 자리를 경험해 본 사람은 금방 눈치 채었을 것이다. '소주를 맥주에 말아 마시는 주법' 말이다. 이른바 소폭(燒爆).

삼겹살이 불판에서 노리끼리 해지기 전 신임 과장은 맥주 컵 열개를 오와 열을 정확히 맞춰 2열 횡대로 진열한 뒤 소주잔에 반 정도 소주를 따른다. 이 소주를 맥주 컵에 다시 붓는다. 맥주 컵 10 잔에 이러 길을 반복한다. 그다음 맥주병 마개를 딴 뒤 이미 소주가 바닥에 깔린 맥주잔이 반 정도 이를 때까지 맥주를 따른다. 그리고 숟가락으로 맥주잔 속에서 공이질 두어 번 '탕탕'해 기포를 발생시킨다. 그 잔들을 참석자들에게 돌린다. 마지막 한 마디 한다. "과장님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 열외 한 명 없이 원 샷!" 더 가관은 이른바 소폭 제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다음 사람, 그다음으로 이어져 10명 모두 소폭 제조자가 된다. 그러니까 한 바퀴 돌아 소폭 10잔을 마신다. 아무리 알코올 도수가 낮아졌다 하더라도 폭주와 주다(酒多)에 장사가 없다. 끝날 때면 물 빠진 낙지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언제부턴가 술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아마도 이런 식으로 술을 마시는 나라는 세계 어디를 가 봐도 흔치 않은 일임에 틀림없다. 사실 이런 주법을 거부하기에는 정말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고 참석자들의 멸시에 따른 수모 또한 감당해야 한다. 싫든 좋든 동참함이 일시적으로 옳은 처사인지도 모른다. 낄 데 끼고 빠질 데 빠져야함이 대세이니까.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어서, 같은 '배를 탔다'는 동류의식을 벗어날 수 없어서, 시대의 음주문화여서 등등 여하튼 여러 이유 다 좋다. 그러나 음주는 조정 경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전쟁에 나가는 것도 아니고, 줄다리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굳지 모두 똑같은 아니 일사 분란한 행동을 해야만 하는가? 왜 우리는 이런 식으로 밖에 술을 마실 수 없을까? 아마도 군사문화에서 온 고질적 사회 악습 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하나'라는 '강요된 공동체 의식'이 우선 하다 보니 '자발적인 나'를 상실한 상태에서 오는 집단 체면상태가 아닐까? 소폭 마실 때 공동체 의식을 위한 강조가 또 있다. '우리가 남이가?' 이는 개별성 발현을 억제하거나 집단주의적 사고방식을 거역하기 힘든 일종의 초기화 설정(default)이기도 하다. 이는 당당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세는 절대 아니다. 그저 세상사에 찌들어 사고를 기피하거나 외압을 이기지 못하는 일차원적 인간의 행태다. 인간은 사회 구성원으로서만이 존재가치가 있다 함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갈수록 자발성이 무시됨 역시 인정해야 함을 간과할 수 없다. '상호 존중 기피'와 '따라 하기 선호'가 요즘 인간들의 보편적 행태다.

BC 5세기 이를 간파한 성인이 있었다. 콩즈(孔子)다. 공교롭게도 그의 탄생에는 술이 숨겨져 있다. 아버지(슈리량허:叔梁紇)가 주막에서 술을 마시고 옌정짜이(顔徵在)에 동하지 않았다면 빛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콩즈가 이르기를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요,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이다."이라 했다. '군자는 남과 조화를 이루지만 생각 없이 따라 하지는 않는다. 소인은 생각 없이 남을 따라 하지만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화(和)는 물 분자 1개와 수소 분자 2개가 결합하는 화학적 결합이고, 동(同)은 경계선이 그어진 물과 기름의 단면적 만남이다. '동'은 언제 어디서라도 분리될 수 있는 반면 '화'는 분리되기 어렵다. 그래서 '화'는 공존이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그저 분위기에 휘말려 소폭 잔이 돌고 도는 음주 문화는 군자들이 할 행위가 아니다. 소인배들이나 할 짓이 아니겠는가? 압력에 의한 동일성은 분위기를 침해하지 않고 좋은 게 좋은 것에서 비롯된 안일한 처사의 발로다. 그렇다면 안일하게 소폭 마시는 우리는 모두 소인배임에 틀림없다. 앞으로는 각자의 무늬를 존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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