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직지코리아 관련사진 / 중부매일 DB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1377년)'과 '증도가자(證道歌字)'를 놓고 벌어진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 논란이 7년 만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문화재청이 최근 문화재위원회를 열고 "증도가자의 보물가치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아 보물지정이 불가하다"고 의결했기 때문이다. 증도가자의 진위논란은 문화계 최대 이슈중 하나였다. 전문가들의 주장도 엇갈리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국립문화재연구소, 그리고 국립지질자원연구원등이 첨단 과학 장비까지 동원해 정밀조사를 했지만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결국 문화재위원회는 "(증도가자가)출처와 소장경위가 불분명하고 금속활자와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청동수반·초두와의 비교조사가 불가능해 고려금속활자로 판단하기도 어렵다"고 명쾌한 판단을 내렸다. 이로써 직지심체요절의 역사·문화적 가치가 재확인됐다.

증도가자 논쟁은 반전의 연속이었다. 2010년 9월 사립미술관인 서울 다보성고미술관이 고려시대 금속활자인 '증도가자' 12점을 확인했다고 주장하면서 촉발된 이후 당시 서지학자인 경북대 남모 교수가 발표한 증도가자 연구 결과에 반박해 중원대 이상주 교수가 반론을 제기했으며 강남대 조형진 교수는 활자 형태와 부식 정도, 출처가 분명하지 않다는 점을 들어 위작(僞作) 가능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가 2014년 하반기 109개 금속활자를 대상으로 검증한 결과 62개가 진품 증도가자란 결론을 내리면서 논란이 끝나는 듯 했다. 금속활자에 묻은 먹이 1033~1155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조사됐다는 국립지질자원연구원의 탄소연대측정 결과가 나오면서 증도가자 진품에 무게가 실린 것이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증도가자 등 고려활자 7개에 대한 3차원(3D) 금속 컴퓨터단층촬영(CT) 결과 모두에서 인위적인 조작의 흔적을 발견했다"며 "CT 및 성분 분석 결과를 종합해 볼 때 고려시대 전통적 방식의 주물 기법에 의해 제작된 활자가 아니고, 위조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아무리 첨단과학이 발달했어도 600여년이나 지난 금속활자의 진위를 판정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현대미술의 거장인 고(故)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가 제작된지 불과 수십년됐지만 아직도 진품여부가 명확하게 가려지지 않아 송사(訟事)를 벌이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비록 시간이 많이 걸리긴 했지만 문화재청이 전문연구기관을 동원하고 각계 전문가의 검증을 거쳐 최종 결론을 내린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이에 따라 직지심체요절의 소중한 가치가 새롭게 조명 받게 됐다. 또 청주 흥덕사지가 세계최고(最古) 금속활자의 산실이라는 것에 대해 시민들은 새삼 자긍심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직지의 창조적인 정신을 되살리지 못한다면 직지는 박제화(剝製化)된 과거의 유산일 뿐이다. 구덴베르크의 '42행 성서'가 '직지'보다 한참 늦었지만 서양인들이 세계최고라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은 당시 유럽의 인쇄문화에 엄청난 파급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청주가 직지의 고장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려면 복합적인 창조력을 계승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번기회에 문화도시 청주의 미래를 위해 독창적인 '직지 정신'을 어떻게 되살릴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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