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달이 물고기를 잡아다 늘어놓고 기러기가 북쪽으로 날아가며 산천의 초목에는 애잎이 돋는다는 우수(雨水), 봄에 태어난 내 몸은 진작에 난리가 나버렸다. 겨드랑이가 간질간질 가려운 것도 같고 발바닥이 꼬물거리기도 하는 것이 아무래도 봄바람을 쏘이고 싶은가보다.
  몸이 시키는 대로 밖으로 나간다. 어디로 간다? 걸을 곳이 없다. 마당을 한바퀴 도는 것으론 어림도 없다고 몸이 또 보챈다. 길은 어디로 갔을까? 길은 언제부터 사라지기 시작했을까?
 저만큼 아지랑이 가물거리며 피어오르던 신작로는 이차선의 옹색한 아스팔트로 변하여 산 같은 화물을 실은 트레일러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승용차의 행렬에 빼앗기고 보드라운 솔잎이 카펫처럼 밟히던 오솔길은 경작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소나무는 모두 베어지고 길은 시멘트로 포장되었다. 찔레꽃, 아카시아 향기 난무하던 마을 앞 시냇가도 반듯한 인공 호안으로 다듬어진 채 나무 한 그루 없는 살풍경한 모습으로 바뀌어버렸다.
 도대체 사람이 걸을 길이 없는 것이다.
 무서운(?) 시민(市民)들이 살고있는 도회지에는 산책로나 자전거 전용도로라는 것이 있지만 별반 무서울 것이 없어 보이는 면민(面民)들이 살고있는 농촌엔 사람이나 차나 경운기나 자전거나 개나 소나 모두 한 길로 다녀야 하는 것이다.
 흰색선 밖으로 난 여분의 길이 곧 인도(人道)인데 그 폭이 몇 센티나 될 것인가. 멀쩡히 걸어가다가도 차 한 대만 지나가면 몸이 휘청거리는 그 위험성은 생각만 하여도 오싹하는 전율이 느껴진다. 인도가 따로 없는 시골도로,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논리는 여기서도 통한다.
 차들이 일으키는 회오리바람에 자전거를 탄 노인이 논바닥으로 쓰러지고 아이들이 다치고 아침이면 동네 개들이, 너구리나 오소리의 주검들이 포도에 널부러져 있는 것이다. 인도가 없는 시골도로는 누구를 위한 도로인가. 사람이 다닐 수 없는 도로는 고속도로나 철로뿐이다.
 인도가 없는 시골길을 걸어다니는 사람은 사람도 아니다. 시골길에서 사람대접을 받으려면 차를 타는 방법밖에 없는 것이다. 잠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오래된 미래´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해본다.
 '오만한 차를 타고/ 왕처럼 달리며/ 온갖 것을 평정했다고 생각하는 자들./ 시골사람도 걸을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을 그들은 왜 깨닫지 못하는가?´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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