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후커플의 지구별 신혼여행]11.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수영장에서 바라 본 쿠알라룸푸르 전경 / 후후커플제공

후후커플은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동반퇴사하고
1년 간 세계여행을 떠난 조현찬(32)·연혜진(28) 부부다.

한 달간의 미얀마 여행을 마치고 네팔로 넘어가기 전, 계획에도 없던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도 머물게 됐다. 말레이시아 국적인 에어아시아 비행기를 타면 쿠알라룸푸르를 거쳐 가까운 싱가포르까지 가볼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네팔에서의 히말라야 트래킹을 하기 전 숨을 고르고 가기로 했다.

쿠알라룸푸르는 작지만, 완벽히 도시화가 되어있어, 어딜 둘러보나 고층빌딩들만 보였고 쇼핑몰도 많았다. 마치 작은 서울 같았다. 이슬람 국가답게 거리에선 까만 히잡을 쓴 여인들이 많았다. 얼마나 답답할까, 나도 모르게 자꾸만 눈길이 갔다. 스타벅스에서 히잡을 쓴 여인들이 줄 서서 커피를 주문하는 모습들도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무슬림 국가는 이런 현대 문물을 누리지 못하고 있을 줄 알았다. 아차, 종교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었다. 히잡을 쓴다고 해서 미용이나 패션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었다. 쇼핑몰엔 다양한 색깔, 황금빛 액세서리로 장식된 히잡들이 하나의 패션으로 자리잡혀 있었다. 다른 나라,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우리가 사는 모습과 비슷했다. 좀 더 다양한 세계를 접해보지 않았던 나는 이렇게 좁은 시선을 갖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 들르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꼬따오에서 함께 다이빙 라이센스를 땄던 태인 언니와도 다시 만났다. 겨우 일주일이었지만 종일 같이 물속에서 훈련하고 맥주도 같이 마시면서 정이 많이 들었다. 또, 남편의 친구나 내 친구가 아닌 우리가 함께 사귄 첫 친구기도 했다. 더 긴 여행을 떠나는 우리를 위해 언니는 마스크팩과 로션, 비상약을 듬뿍 챙겨줬다. 그 마음을 잊을 리 없다. 받기만 하고 해줄 수 있는 게 없던 우리는, 여행을 마치면 우리에게 정을 나눠준 사람들에게 더 큰 정을 베풀어주자며 약속했다. 신혼집이 생기면 사람들을 초대해 요리도 대접해주고, 마음을 담은 선물도 줘야지.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어떻게 베풀어야 하는지 서툴렀던 내가 여행을 하면서는 어떻게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해야 할지를 고민한다.

쿠알라룸푸르를 대표하는 건축물,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 후후커플 제공

언니와 함께 쿠알라룸푸르를 대표하는 건축물, 페트로나스 트윈타워에 갔다. 똑같이 생긴 이 두 타워는 한국과 일본의 건설사가 각각 세운 것으로, 서로 빨리 완공하기 위해 경쟁했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한국의 삼성물산이 늦게 건설을 시작했으나 일찍 완공해 두 타워를 연결하는 다리까지 완성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시금 두 타워를 올려다보았다. 어느 쪽이 한국 건설사가 세운 건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똑 닮은 두 타워다. 쿠알라룸푸르 하면 떠오르는 명소인 이 트윈타워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으니,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다음날, 쇼핑몰에 있는 스타벅스에 들어가 아메리카노 한잔을 주문했다. 여행 중 처음으로 마신 스타벅스 커피였다. 여행하면서 이런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건 조금 사치가 아닐까? 잠깐 망설였지만, 냉방도 잘되는 카페에 여유롭게 앉아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선 이내 수긍했다. "하, 우리가 스타벅스 한잔에 이렇게 행복해하다니." 그 순간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었으니 그걸로 되었다. 오랜만에 마신 아메리카노는 한국에서 매일 마셨던 바로 그 맛이었다.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나는 한국에서의 내 삶을 자꾸만 돌이켜봤다. 그때의 나를 지금의 내가 다시 돌아본다는 건, 좀 더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는 걸 의미했다. 불과 몇 개월 사이 나는 결혼을 했고 잘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시작했다. 내게 놓인 상황과 환경 모두가 바뀌었다. 반복된 일상이 지겨워서 여행을 떠났지만 매일 여행 중인 나는 모순적이게도 이따금 그 일상을 그리워했다. 매일 출근하며 업무 스트레스를 받았던 회사생활까지 그리워했다면 사람들이 믿을까.

꼬따오에서 만난 인연, 유쾌한 태인언니와 '찰칵' / 후후커플 제공

여행을 시작하면서 매번 다른 여행지에서 여태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고 겪으면서 새로운 자극과 영감을 받지만, 그와 동시에 한국에서의 나의 생활과 가족, 친구들, 직장생활, 꿈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한다. 참 모순적이지 않은가. 한국에서는 틈만 나면 해외여행을 다니고 싶어서 안달 났던 내가, 원 없이 세계여행을 다니는 지금은 도리어 한국에서의 내 삶을 그리워한다는 것이. 하지만 나는 깨달아야 했다. 한국에서의 내 삶이 왜 당연하다고만 여겼었는지, 작은 것 하나로 사람이 얼마만큼 행복해질 수 있는지, 또 사람이 행복해지는 데엔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깨달아야 했다. 한국에서는 조바심과 욕심, 허영심에 차마 내려놓을 수 없었던 그 많은 것들이, 여행에 나와서는 자연스럽게 깨닫는다. "그렇게 바쁘게 살지 않아도 돼, 그냥 잠깐 내려둬." 머리론 알아도 차마 내려놓지 못했던 것들. 그 모든 것들을 한 번에 내려놓고 여행을 떠나고 나서야 알아차렸다. "그래도 되는 거였구나. 그렇게 크게 달라지지 않는구나." 그래, 나는 이제 더이상 겁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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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후커플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이야기 (보너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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