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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세이] 묵언이영희

거울 속의 머리를 보며 봄바람이 속삭인다. 꽃샘바람을 즐기듯 30년 단골 미용실을 찾으니, 이웃사촌이 무엇 때문에 틀어졌는지 외면을 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소연을 한다.

대나무는 사철 푸르고 곧은 가지로 충신열사의 표상이었고, 사군자로 대접받는 나무였는데 요즈음의 평가는 다르다. 속이 텅 비었으면서 허세를 부리고 남을 위해서 그늘도 만들어 주지 않으며 꼿꼿하게 변하지 않는 아집으로 쓸모가 없다고 한다. 또, 흔히 흥부는 착하고 놀부 부부는 못된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흥부가 밥을 푸는 형수 옆에서 "형수님, 흥분데요"해서 주걱으로 한 대 맞고 붙은 밥알을 떼어먹으며 "아직 서 있어요"해서 또 주걱으로 얻어맞았다. "제가 사정할 데가 형수님 밖에 없어요"해서 더 맞았단다. 흥부가 형수한테 이렇게 말했으니 맞을 짓을 한 게 아니냐고 한다. 물론 조금은 야한 우스갯소리지만 보는 각도에 따라서 해석은 이렇게 달라진다.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는 문장 밖에 없다'는 명구가 생길 만큼 세상은 광속으로 발전하고 있다. 서로 오해한 것을 대화로 풀어보라고 권했더니 웃으면서 이내 속이 시원해졌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일이 내게도 찾아왔다. 한동안 모임에 나가지 않다가 참석하기 시작하면서 우스갯소리가 많아졌다. 참석하는 모임에서 한 마디도 안 하고 있을 수 있는 무게 있는 성격이 못 되어 생각해 낸 게 유머였다. 암기는 아직 잘하니 들은 것을 전달하면 같이 웃을 수 있고 뒤끝이 없지 싶어서였다. 반복하다 보니 분위기 메이커라며 유머와 해학을 보내달라고 주문하는 지인까지 생겼다.

그날도 모임에서 사람들을 많이 웃게 하는 의사 이야기를 하려는데 자식이 의사인 어머니가 보였다. 제가 하는 이야기를 그냥 우스갯소리려니 하고 이해해달라고 먼저 양해를 구했다. 그 딸이 어렵게 공부한 것이 생각났는지 내색을 않으려 하면서도 언짢은 기색이 보였다. 차라리 무관심할 것을, 같이 웃자고 한 말이 불편하게 만든 것 같았다.

글을 쓰는 사람은 한 사람의 독자가 있어도 의미를 부여하고 쓰는데, 선의를 가지고 했어도 누군가에게 작은 상처라도 주었다면 잘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즐겁게 하려고 우스갯소리를 해도 사람마다 온도 차이가 크다는 것을 실감한 것이다. 반짝이는 순발력에 매료당하여 다시 끌어 담을 수 없는 카톡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 습관을 유지하고 지낸다. 그래도 말 수가 적은 남편이 유머를 수시로 구사하여 웃게 할 정도가 되었으니 말 수가 보이지 않게 늘어났지 싶다.

직장 생활을 할 때 서로의 책무나 목표가 달라서 가끔은 부딪힌 일이 있었지만 퇴직을 한 후 이럴 일이 없어서 좋았다. 시간적 여유가 생겨서 가족끼리도 더 배려하게 되어, 나이 드니 참 좋다 했는데 섣부른 판단이었나 보다. 벌써 감(感)이 떨어진 것인지, 아니면 긴장하지 않음에 익숙해졌는지 몰라도 삼가라는 메시지임에 틀림없다.

2월 초하루 법회에 참석하고 해우소 청소를 하는데 걸레를 짜는 통이 돌아가지를 않았다. 묵언 수행을 하며 청소를 하는 스님께서 "얼어서 그러니 히터 옆에 놓으라"라고 손바닥에 쓰신다. 얼른 이해하지 못하여 민망했다. '지혜 있는 자는 말수가 적고, 말 많은 자는 지혜가 적다'라는 도덕경의 경구를 참선으로 실천하시고 계시는 것 같다.

눈으로 말하고 가슴으로 전하는 묵언을 듣지 못하니 새삼 말 이란 게 얼마나 편리하고도 어려운지, 묵언수행은 또 얼마나 불편하고 정진을 요하는지 짐작이 갔다.

말로 지은 죄를 사하여 달라고 시작하는 천수경을 아침마다 지송하고, 매사에 감사하고 웃으며 살자고 하면서도 말의 편리함과 어려움을 적당하게 구사하지 못하니 부끄러운 일이다. 온 나라가 말의 홍수 속에 묻혀 사는 요즈음 '말로서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라던 작자 미상의 시조가 선인의 지혜로 다가온다.

주위 사람들이 불편하고 답답할 수도 있지만 말의 태풍에 휘말려 사람의 마음을 시들게 하고 베이게 하는 것보다 묵언이 낫지 않을지. 불편함을 감내하며 묵언 수행을 오래 하시는 스님의 마음이 오늘따라 고스란히 전해진다. 입은 건강의 바로미터인 섭생의 문이지만 말할 때는 인격의 문이니, 발효되고 정제된 말이 나오도록 한 번 더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중부매일  jb@j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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