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김민정 수필가

솟대(자료사진) / 뉴시스

자신의 온몸을 새까맣게 태운 벚나무가 가지마다 화상 자국으로 부풀어 오른 분홍 물집 터트리는 소리로 분분한 한낮이다.

야산에는 창 꽃이 확 달아오른 새아씨 볼처럼 화사한 자태로 흐드러졌다. 한주 정도 지나면, 어느 날 갑자기 꽃을 피운 것처럼 벚꽃도 창 꽃도 푸른 잎만 남겨두고 사라질 것이다. 겨우내 기다렸던 봄도 벚꽃도 짧아서 더 예뻐 보이고 애뜻한 기분이 드는 걸까, 올 봄도 그렇게 가고야 말 것이다. 한가로이 안산(案山) 둘러보며 봄을 만끽하고 있는데 문득 김의 공방이 궁금해졌다.

공방을 가득 메운 나무 향기에 취해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조각을 하던 김의 모습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다행이 지금 와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차를 몰았다. 김은 아버지와 당숙간이며 나와 나이가 같다. 궁평 뜰을 지나 걷다보면 넓고 긴 냇가가 앞길을 가로 막는다. 허벅지까지 바짓가랭이를 걷어 올리고 냇물을 건너면 '봉두리'라는 마을에 큰아버지 댁이 있다. 지금은 개발이 되어 없어졌지만 60년대 말에는 뚝방 아래로 미호천이 흐르고 천변에는 천지가 수박밭이었다. 큰아버지 댁과 나란히 담을 나눈 옆집이 김의 집이었다. 여름방학이 오면 김과 함께 천변에서 곤충채집도 하고 수박밭 원두막에서 공작 숙제를 했다.

얼마 만에 찾아 가는 길인가, 산자락 햇살 좋은 자리에 위치한 '정승원'이 멀리 보였다. 산모퉁이를 돌아서자 김의 집에 세워둔 솟대가 보였다. 입구 주변에는 웃음 띤 표정부터 해학적인 표정과 괴기한 표정까지 장승이 줄지어 서 있었다. 공방에는 작품이 빼곡했다. 김은 주로 장승과 솟대를 만들었다. 목을 길게 늘여 놓인 그 위에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한 봉황, 두 마리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물새 , 한 마리씩 여러 개의 솟대가 서 있는 모습들이 그의 투박하고 거친 손을 거쳐 태어났다. 전통 축제장에 설치할 솟대 준비를 하고 있는 그는 한 마리 원앙을 작업 중이었다.

사포로 문질러 다듬고 반질반질해질 때까지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은 나무와 열렬한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행복해보였다. 죽은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는 김의 얼굴이 사뭇 진지해 보였다. 그의 작품 대개가 부리부리한 눈매, 쫙 벌린 입, 그리고 투박한 코 뭉치의 장승을 다루는 사람답지 않게 마른 어깨 아래로 잔 근육이 높게 움직였다. 언제나 그랬듯이 작업을 하는 내내 대화가 없었다. 거칠지만 부드러운 대패소리, 소음처럼 들리는 정과 끌이 맞닿는 소리, 조각칼의 예리한 움직임 속에서 그는 오로지 나무와 무언의 대화를 나누며 몰두했다.

김민정 수필가

사각사각하는 소리는 세상을 향해 모난 마음을 다듬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저 나무 대신 나를 작업대에 올리고 싶었다. 내 안에 수많은 편린으로 각을 세우고 있는 편협한 편견을 도려내고 싶었다. 김은 나의 세포를 포용과 사랑으로 살아 갈 수 있도록 바꿔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음도 머리도 냉골인 내게 나만의 온기를 끌어내 주리라고, 밀고 쓸어내고 문지르기를 반복하는 김은 작의 (作意 )를 빛나게 했고 작가로서 한껏 격상되어 보였다. 나무와 함께 할 때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한 말이 전부였다. 나는 기괴한 장승 앞에 다시 섰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들의 모습이 장승으로 투영된 것 같아보였다. 어느새 반백이 되어버린 흰머리를 쓸어 올리며 솟대를 깎는 그의 모습에서 장인의 혼이 느껴진다. 그가 손을 흔들며 서 있는 모습이 백미러에 박힌다. 창문을 열었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봄바람은 쉼 없이 봄 향기를 실어 나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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