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청주시는 지난해 생각치도 못했던 두툼한 '가윗돈'을 챙겼다. SK하이닉스가 2015년 사상 최대 영업실적을 거두면서 381억원의 지방세를 한꺼번에 냈기 때문이다. 이 회사가 법인 지방소득세를 낸 것은 1995년 이후 처음이다. 청주시는 이 돈으로 추경예산안을 편성해 복지현안 사업을 벌였다. 당시 추경 예산 대부분이 SK하이닉스가 납부한 지방소득세를 재원으로 삼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SK하이닉스 추경'이란 말도 나왔다. SK하이닉스가 2025년까지 15조5천억원을 투자해 청주공장을 확장하면 시 재정은 더 탄탄하게 된다. 기업유치가 지역경제에 얼마나 큰 보탬이 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SK하이닉스의 전신(前身)인 하이닉스는 한때 '애물덩어리'였다. 원래 LG그룹 계열사였으나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김대중 정부의 반도체 빅딜에 따라 현대그룹으로 넘어갔지만 현대반도체는 부실을 견디지 못해 워크아웃 기업으로 추락했다. 이후 회사명을 '하이닉스'로 바꾸고 기술혁신과 원가절감으로 재기를 노렸으나 주인 없는 기업의 설움을 맛보며 수차례 매물로 나왔다. 그러나 9조원의 부채를 짋어진 부실덩어리를 인수할 만한 회사는 별로 없었다. 이런 하이닉스를 주목한 것이 최태원 SK그룹 회장이었다. 그가 3조4267억원에 하이닉스를 인수하는 승부수를 던진 것은 절묘한 '신의 한수'였다. 하이닉스는 인수 5년만에 '복덩어리'로 떠올랐고 내수기업이라는 프레임에 갇혔던 SK그룹은 수출주도형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최 회장은 2003년 분식회계, 2012년 횡령 혐의로 2번이나 구속되는 경험을 했다. 2015년 8월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풀려나기 전까지 옥중경영을 할 만큼 그룹 전체가 힘든 시기도 겪었지만 SK하이닉스의 대도약으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D램의 가격 상승 덕에 연간 영업이익이 10조 원이 넘을 것이라는 장미빛 전망이 나온다. 1분기 영업이익은 약 2조5000억 원으로 영업이익률이 무려 40%에 육박한다. 이 때문에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추격자'에서 '선두권 주자'로 자리매김하는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SK하이닉스의 취약점은 D램 사업의 비중이 너무 높다는 점이다. 글로벌 낸드플래시 시장점유율은 10%로 5위에 머물렀다. 낸드플래시는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저장되는 메모리반도체다. 낸드플래시 시장에 연착륙하지 않으면 언제든 추락할 수 있다. SK하이닉스가 20조 원이 넘는 일본 도시바의 메모리 반도체 사업부문 인수전에 뛰어든 것도 이 때문이다. 최 회장은 반도체사업을 그룹의 미래 '성장엔진'으로 보고 있다.
고(故) 이병철 회장은 "반도체 사업은 3년 안에 실패할 것"이라는 사내외의 반대를 무릅쓰고 1983년 반도체사업에 진출해 삼성전자를 세계적인 IT기업으로 키웠다. SK하이닉스가 천문학적인 '쩐(錢)의 전쟁'에서 이겨 도시바를 품에 안는다면 2세경영인 최 회장은 재평가될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은 하이닉스 인수직후 청주공장을 방문해 "하이닉스가 행복해지는 만큼 국가경제도 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디 국가뿐이랴, SK하이닉스가 행복하면 지역경제도 활기를 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