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병학의 사진학교]25

British Museum

벤야민은 '사물의 진품성' 특징들을 '아우라(Aura)'라는 개념으로 요약할 수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 가능성의 시대에서 위축되고 있는 것은 예술작품의 아우라이다. (...) 복제기술은 복제된 것을 전통의 영역에서 떼낸다. 복제기술은 복제를 대량화함으로써 복제 대상이 일회적으로 나타나는 대신 대량으로 나타나게 한다. 또한 복제기술은 수용자로 하여금 그때그때의 개별적 상황 속에서 복제품을 쉽게 접하게 함으로써 그 복제품을 현재화한다. 이 두 과정, 즉 복제품의 대량생산과 복제품의 현재화는 전통을 엄청나게 뒤흔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벤야민은 예술작품의 진품성을 요약할 수 있는 아우라가 기술적 복제로 인해 위축된다고 본다. 왜냐하면 '복제기술은 복제된 것을 전통의 영역에서 떼낸다'고 보기 때문이다. '떼낸다'는 벤야민의 '사진의 작은 역사'에서도 등장한다. "대상을 그것을 감싸고 있는 껍질에서 떼어내는 일, 다시 말해 아우라를 파괴하는 일은 오늘날의 지각이 갖는 특징이다."

대상을 감싸고 있는 껍질에서 떼어내는 일이 아우라를 파괴하는 일. 따라서 그것은 예술작품을 전통의 영역에서 떼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전통의 영역에서 떼내기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것은 예술작품의 여기와 지금으로서, 곧 예술작품이 있는 장소에서 그것이 갖는 일회적인 현존재'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 이를테면 그것은 예술작품을 예술작품이 있는 장소에서 떼내는 것이라고 말이다.

Louvre Museum

'다른 어느 곳도 아닌 바로' 예술작품이 있었던 장소에서 '그 예술작품이 존재하는 동안 처했던 역사가 이루어져 왔다'고 벤야민은 진술한다. 따라서 예술작품의 역사에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 예술작품이 물질적 구조에서 겪어온 변화들뿐만 아니라 그것이 편입된 소유관계의 변화도 포함된다'고 벤야민은 말한다. 두말할 것도 없이 '소유관계에서 일어난 (예술작품의) 변화의 흔적'은 '원작이 있는 장소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벤야민은 예술작품의 역사(전통)을 추적하는 일은 '원작이 있는 장소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원작이 지금 여기 존재한다는 사실'은 '원작의 진품성이라는 개념'을 뜻한다. 벤야민은 예술작품의 진품성을 그 예술작품의 '물질적 지속성'과 함께 그 예술작품의 '역사적인 증언가치'까지 포함하여 그 예술작품에서 '원천으로부터 전승될 수 있는 모든 것의 총괄 개념'으로 본다. 따라서 예술작품의 역사적인 증언가치는 예술작품의 물질적 지속성에 그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예술작품의 물질적 지속성이 그 장소를 떠나게 되면 예술작품의 역사적 증언가치 또한 흔들리게 된다.

물론 이때 흔들리게 되는 것은 (벤야민의 목소리를 빌려 말하자면) '예술작품의 권위, 예술작품의 전통적 무게'이다. 그렇다면 예술작품의 권위, 예술작품의 전통적 무게(의미)를 흔드는 것은 복제기술의 탄생에서 시작된 것이라기보다 박물관의 탄생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왜냐하면 박물관은 예술작품이 있었던 장소에서 떼냈기 때문이다.

Vatican Museum

우리가 흔히 세계 3대 박물관으로 부르는 루브르 박물관, 바티칸 박물관, 영국 박물관은 복제기술이 탄생하기 전에 등장한다. 1682년 루이 14세가 처소를 베르사유 궁전으로 옮기면서 루브르 궁전은 루브르 박물관으로 변모한다. 루브르 박물관은 프랑스대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끈 국민의회가 국민들을 위해 루브르 걸작들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변모해야 한다고 천명하여 1793년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약 1,400실에 이집트, 그리스, 아시리아 등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조각품, 명화,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는 바티칸 박물관이 일반에게 공개된 시기는 클레멘스 14세 치하인 1773년이다. 그리고 제국주의 시대에 각국에서 약탈한 문화재가 포함되어 있어, 해당 국가의 반환요구도 끊이지 않고 있는 영국 박물관은 1759년 설립하여 일반에게 공개된다. 따라서 세계 3대 박물관은 일종의 '약탈 박물관'인 셈이다. / 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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