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세이] 꽃밭, 글밭을 가꾸며
[주말에세이] 꽃밭, 글밭을 가꾸며
  • 중부매일
  • 승인 2017.04.27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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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난영 수필가

어려서부터 길가에 흔하디흔한 물망초를 보고도 그냥 지나치지 못할 정도로 남달리 꽃을 좋아했다. 친구들과 술래잡기나 고무줄놀이보다는 독서나 꽃과 함께 있는 것이 더 재미있고 즐거웠다.

혹한을 이겨내고 이른 봄 연분홍 꽃을 피우는 진달래와 노란 개나리꽃을 보며 희망을 품었고, 아침마다 눈 맞추며 인사하는 나팔꽃을 보며 기쁨을 얻었다. 내 이름을 상징하는 단아한 자태의 난초꽃은 바라만 보아도 좋았다.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얗게 핀 배나무 꽃을 보며, 센티멘털해졌던 기억은 지금도 아련한 추억으로 떠오른다. 보라색 도라지꽃의 고고한 자태는 어린 소녀의 마음을 설레게 하였다.

초가을 양지말과 음지말로 이어주는 마을 길은 풍요롭고 아름다웠다. 황금색 들녘 한가운데 색색의 코스모스와 백일홍, 맨드라미꽃의 아름다운 영상은 가슴속 그리움의 방에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향기는 강하나 교만하지 않고 우아하면서도 소박한 모습의 백합에서 순결한 사랑을, 복숭아 꽃밭에서 꿈과 희망을 잉태하였다. 인근 마을에 없는 화사한 복숭아꽃이 필 때는 세상 다 가진 듯 행복했다.

신혼 초 단칸셋방에 살면서도 꽃을 사들였고, 혼수품 1위가 책이었다. 집을 살 때도 책장과 화분 놓을 장소부터 물색했고, 아침밥은 굶어도 300개가 넘는 화분에 물 주고 출근할 정도로 사랑과 정성을 들여 가족들의 눈총을 받았다.

해외여행을 가도 특이식물과 꽃부터 눈에 들어온다. 늦은 밤 호찌민에 도착해 바로 숙소로 이동하여 외국이란 느낌이 들지 않았는데,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완전히 딴 세상이다. 열대 식물과 화사한 꽃들이 반기는데 가벼움과 홀가분함 때문인지 탄성이 나올 만큼 황홀해 보였다.

허리 디스크 외에는 특별히 아픈 곳은 없었지만, 지난 2월 초순 종합검진을 했다. 몇 군데 암으로 의심되어 조직 검사하고 나니, 결혼한 아들보다도 결혼 안 한 딸과 남편이 밟혀 만감이 교차했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일상의 단조로움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새삼 느껴졌다. 며칠간 마음 졸이다가 모두 암이 아니란 소리에 반갑고 감사해 콧등이 시큰했다.

상쾌한 기분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강렬한 색상의 부겐빌레아 꽃이 금빛 햇살에 찬란히 빛난다. 나비처럼 나풀나풀 춤추는 앙증맞은 얼굴로 유혹하는데 매료되지 않을 수가 없다.

오동나무처럼 큰 아름드리나무에 빨강 노랑의 커다란 꽃송이는 행복 주머니 같아 미소를 자아낸다. 재스민 향기가 코끝을 간질이는 빈트랑 사원은 맑은 하늘과 화려한 건물, 거대불상, 수십 종의 아름다운 꽃과 어우러져 한 폭의 유화를 보는듯했다.

원주민의 생활상을 돌아보는 것도 의미 있었고, 일교차를 줄이려는 용과 농장의 화려한 전등 불빛도 이색풍경이었다. 덜컹거리는 지프를 타고 한 시간 이상을 달려 도착한 화이트샌듄과 레드샌듄은, 사막이 아닌 초원의 한가운데 위치한 거대한 모래언덕으로 이집트 여행 때도 못해본 맨발로 걷는 소중한 사막체험이었다.

요정의 샘은 그랜드 캐니언을 연상케 하는 비경의 붉은 협곡으로, 수천 년 풍화작용으로 형성된 웅장한 언덕이다. 석회수가 흘려내려 고운 모래 위에 긴 시냇물이 흐르는 작은 협곡을 맨발로 걷는 것이 요정의 샘 묘미다.

가슴 아픈 전쟁의 역사를 돌아본 호찌민에 있는 전쟁 박물관을 제외하고는 눈, 귀, 입, 마음조차 호사를 누렸다. 베트남의 하와이로 불리는 판티엣 무이네는 가는 곳마다 꽃들의 잔치와 짜릿함을 느낄 수 있는 스릴 만점의 체험, 풍성한 먹을거리에 호기심과 즐거움이 가득했다. 정크선 타고 밀림 지역 탐사할 때는 반대편에서 오는 배와 부딪힐까 조마조마 가슴 졸였던 기억에 피식 웃음이 난다. 암이 아니란 소리를 듣고 간 여행이기에 더 즐겁고 행복하지 않았나 싶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꽃을 가꾸고 글을 쓰며 다시금 힘을 얻고, 새로움이라는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었다. 할머님과 어머님의 오랜 병간호로 쓰러지기 일보 직전 수필을 쓰기 시작해 등단이라는 행운까지 얻었고, 꽃을 가꾸며 마음을 힐링했다.

대퇴부 골절로 3개월이나 움직이지 못할 때도 수필집을 발간하며 좌절과 아픔을 견뎌냈다. 후유증으로 일 년 동안 나들이를 못 할 때도 꽃밭, 글 밭을 가꾸며 힘듦이 아닌 행복으로 받아들였다.

꽃을 기르고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살아가는 삶의 원동력이며 행복비결이다. 꽃은 긍정의 힘과 행복한 미소를, 글쓰기는 나를 돌아보고 마음을 비워 행복해지는 법과 올곧은 삶으로 인도하고 있으니.

이난영 수필가

인간의 눈에 비친 지고의 아름다움인 꽃과 문학은 마음을 아름답게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침묵의 언어를 가르쳐 주었고, 사랑, 꿈, 희망을 주었다. 그들이 주는 기쁨에 내 마음은 늘 감사하고 행복했으니, 작지만 큰 존재였던 것 같다.

좁은 마당이 알록달록 화사한 꽃과 신록으로 채워져 싱그러움으로 가득하다. 눈 돌리면 훨씬 아름다운 꽃이 많이 있지만, 내 손길이 닿아서인지 볼수록 예쁘고 마음을 달래주는 깊은 향기가 나는 것 같아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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