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25일 오후 제주시 이도2동 제주시청 종합민원실 앞 도로에서 박근혜 정권 퇴진 제주행동 주최로 제주지역 18차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한 어린아이가 신기한 듯 촛불을 바라보고 있다. 2017.02.25. / 뉴시스

선거는 투표함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 작년말 미국 대선이 그랬다. 선거 당일까지 과학적, 통계학적인 여론조사와 전문가들의 결론은 힐러리의 압승이었다. 물론 트럼프의 승리를 예견한 분석과 여론조사도 있었지만 힐러리 대세론에 묻혔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민주당 예선통과 조차 의문시되던 트럼프는 대이변을 연출하며 끝내 백악관을 접수했다. 우리나라 대선판은 어떨까.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 이제 진짜 승부가 시작됐다. 미국 대선처럼 이변의 주인공이 탄생할까. 아마 무망(無望)할 것이다. 나올만한 모든 변수와 시나리오가 이제 확실히 드러났다. 추격자들의 반전카드도 여의치 않다. 애당초 보수분열이라는 고착된 선거구도가 이변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격언에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다. 이번선거에서 보수는 부패가 아니라 분열로 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박근혜 전대통령 실정과 파면으로 보수가 뭉쳐도 이기기 힘든 게임에서 덧셈정치가 아닌 뺄셈정치를 택했다면 승부는 뻔하다. 더구나 비문연대를 할 만한 명분도 마땅치 않을뿐더러 문재인 후보측에서 비문단일화는 '적폐세력'이라는 단단한 프레임을 걸어놓아 힘을 쓰기도 쉽지 않다. 이런 구도에서 문 후보측의 패권정치와 안보불안이라는 아킬레스건을 경쟁후보들이 아무리 붙잡고 늘어져도 먹혀들지도 않는다. 선거 날은 하루하루 다가오지만 보수진영에겐 희망보다 절망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이번 선거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진보진영에서는 '정권교체'라고 할 것이다. 문재인 후보가 선거기간 내내 가장 많이 쓴 단어이기도 하다. 누가 당선되든 정권은 교체되지만 문 후보는 자신이 이겨야 정권교체라고 보았다.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이명박·박근혜의 아류라는 올가미를 씌우고 있다. 전형적인 편가르기와 프레임전략이다. 그렇다면 정권이 교체되면 나라가 바뀔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선거전략상 유용한 무기가 되겠지만 당선되면 독선과 패권으로 구태정치의 망령이 되살아날 수 도 있다.

서울구치소 3평짜리 방에서 재판에 임하고 있는 박근혜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불통' '비선' 그리고 '부패'다. 이 세가지가 그를 몰락시켰다. 하지만 그는 탄핵이전과 파면이후에도 단 한번 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적이 없다. 오히려 억울해 하고 있다는 편이 맞는다. 그렇지 않다면 헌법재판소까지 가기 전에 하야했을 것이다. 그의 심리적인 저변에는 진보든, 보수든 역대 정권이 그 정도 오점은 남겼는데 왜 자신만 청와대에서 쫓겨 나와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변호사 비용을 대기위해 오랫동안 살았던 삼성동 자택까지 팔아가면서 재판에 대비하는 것은 자신은 결백하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전두환 전대통령이후 모든 대통령들이 임기말년에 비리와 부패의 오물(汚物)을 뒤집어썼다.

하지만 박근혜가 모르는 게 있다. 세상이 바뀐 것이다. 국민의 의식수준도 달라졌다. 그렇다고 국민의 형편이 나아진 것도 아니다. 양극화는 심화됐고 좌절하는 청년들은 늘고있다. 박정희 시대의 개발독재는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지만 이젠 한물간 패러다임이다. 대통령은 절대적인 권력을 가졌지만 권력을 남용하거나 오용했다가는 정권은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서울 광화문을 비롯 전국적인 촛불집회는 민심의 가공할 힘을 보여주었다. 해방이후 투표가 아닌 국민적인 저항으로 정권이 바뀐 것은 세 번 째다. 1960년 4.19혁명, 1987년 6.10민주항쟁, 그리고 2016년 촛불시위다. 그리고 두 번의 국민저항은 의원내각제 도입과 대통령직선제 헌법개정으로 대한민국의 정치문화를 바꾸었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이번 '장미대선'이 단순히 정권교체로만 끝난다면 박근혜 심판의 의미는 반감된다. 진보정권으로 바통 터치된다고 나라가 변하지는 않는다는 것은 진보정권 10년, 보수정권 10년의 세월이 웅변한다. 대통령의 이념이 다르다고 구시대적인 악습이 사라지지 않았다. 자신이 청와대에 가면 세상이 달라질 것이라는 믿음이 오히려 부메랑으로 돌아와 치명상을 입혔다. 다음 대통령이라고 다를리 없다. 시대정신에 맞는 새로운 비전과 리더십을 보여주려면 정치구조부터 혁신돼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한계는 이미 드러났다. 그래서 정치혁신의 첫 걸음은 개헌이다. 국민저항과 촛불혁명의 소중한 가치를 지키려면 정권교체 그 너머를 바라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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