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진혁 관장, 차 도구·자료 40여 년 수집 개관
옛 봉양초 봉남분교 자리…18일 그랜드 오픈
수천만원 호가 보이차·그릇 등 2천500점 전시

한국차문화박물관

[중부매일 이보환 기자] '애다흥국 애주망국(愛茶興國 愛酒亡國)'

차를 마시는 민족은 흥하고, 술을 마시는 민족은 망한다.다산(茶山) 정약용 선생이 남긴 말이다.

추사 김정희, 초의선사와 함께 조선시대 3대 다인으로 통하는 정약용 선생은 차가 좋아서 호를 다산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정부는 연말이면 국민이 먹는 술 소비량을 발표하고, 술의 사회적 비용까지 우려한다. 비단 어른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나 엠티 등 회합 장소에서는 음주로 비롯된 사건·사고가 빈번하다.

보이차 애호가로 유명한 권진혁 전 대원대 국제교류원장이 한국차문화박물관을 마련했다. 그는 이제 한계점에 도달한 우리의 술문화를 차문화로 바꿔 청소년 문제까지 해결하겠다고 한다.

한국차문화박물관

한국차문화박물관(관장 권진혁)은 충북 제천시 봉양읍 국사봉로 741 옛 봉양초 봉남분교 자리에 있다.

지난 4월20일 문을 연 이곳은 오는 18일 그랜드 오픈에 맞춰 실내 인테리어 등 마지막 정리작업이 한창이다.

박물관에는 동아시아 차문화 도구 2천500여 점의 차와 차도구가 전시됐다. 중국 소수민족인 운남성 나시족 사람들의 동파 상형문자가 새겨진 화선지부터 수천만원에 이르는 보이차까지 다양하다.

차를 우릴 때 내는 그릇인 자사호(紫沙壺)는 장수성 의흥(宜興이싱) 지방에서만 나는 흙과 돌을 이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1950년대 생산된 '남인철병'은 보이차 애호가들에게는 귀하디 귀한 존재다.

일본의 차잔은 세밀한 그림이 특징이다. 찻상을 만들면 반드시 케이스 형태의 집을 만든 것으로 미뤄 일본의 기록문화와 보관문화를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 차도구도 전시가 예정됐는데 '다반사'라는 말처럼 쉽게 차를 접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권 관장은 1974년부터 40년 이상 차도구를 수집했다. 박물관을 만들기 전에도 2010년, 2012년 한중 보이차 세미나를 개최하고 2013년에는 차도구 전시회를 잇따라 열었다. 국내에서도 보기 드문 규모와 수준을 자랑하는 이 박물관에서는 보이차 무료체험이 가능하다.

중앙고속도로 제천 나들목에서 15분 거리에 있으며 차량으로 제천고속터미널에서도 20분이면 도달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입장료는 어른 8천원, 초중고생 5천원이다.

권진혁 관장은

권진혁 관장

권진혁 관장의 첫인상은 '재기발랄'이다. 1953년생으로 우리나이로 65세지만 그의 아이디어와 재담은 청년급이다.

2013년 학교법인 민송학원의 대원대 국제교류원장으로 정년 퇴임한 뒤 더 바빠진 것 같다.

"저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그만큼 오늘 하루만 충실하자 다짐하면서 최선을 다합니다.사람이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그래서 좋아하는 차 마시고, 책 읽고, 글씨 쓰고 그렇게 재미있게 놀고 있습니다."

그의 이력 또한 화려하다. 1994년부터 학교법인 민송학원(대원대) 사무국장, 사무처장, 세명대학교 법인사무국장, 대원대국제교류원장으로 20년을 재직했다.

경북 예천 출신인 그는 민송학원에 오기 전 (주)태영그룹 윤세영 회장 비서, 청주대학교 총장 비서실장을 지냈다.

전국전문대학사무처장협의회 회장, 전국전문대학국제교류부서장협의회 회장을 역임해 기업체 특강자리에도 단골로 불려나간다.

하지만 권 관장의 진면목은 그의 내면이다. 시쳇말로 여느 좋은 자리에 있었던 사람과는 결이 다르다. 그는 찾아오는 사람에게 차를 대접하고, 세상과 사람들에게 항상 감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

시간날 때 차를 나눠 마시고, 인근 텃밭을 일궈 푸성귀도 가꾸고, 자전거로 동네를 한바퀴 돌면서 이웃과 교류한다.

자신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지만, 결과적으로 이웃에 대한 관심의 다른 표시다.

그는 "나를 최고로 사랑하는 사람만이 단 한번 뿐인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도록 노력한다"며 "그런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인생도 귀하게 여길줄 안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의 아파트를 처분하고 제천에 박물관을 연 것도 지금까지 갖고, 누려온 것을 지역사회와 나누자는 의미다.

한국차문화박물관의 미래

요즘은 핵가족시대, 맞벌이 부부가 대세다. 설사 그렇지않다 하더라도 가족이 밥상에 마주않기도 어렵고, 대화는 더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권 관장은 한국차문화박물관을 연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예전 어른들이 밥상머리 교육을 이야기하잖아요.그런데 이제는 찻상머리 교육으로 바꿔야 합니다.서로 바쁜 일상속에서도 차를 한잔 같이 하면서 가족간 대화하자는 뜻입니다."

집에서 해도 좋지만, 나들이 삼아 박물관을 찾아 차도구도 보고, 따뜻한 차한잔 나누면서 소통해보자는 뜻이다. 거창한 것을 배우고 공부하는 딱딱한 박물관이 아니다. 우리가 보고, 느끼고, 맛보고, 즐기는 그런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조금 더 나아가 박물관 부설 대안학교를 만드는 것이 권 관장의 꿈이다.

차를 같이 마시고, 공부도 같이하는 동갑내기 도반인 신상숙 전 봉양중 교감과 의기투합했다. 함께 대안학교를 만들어 자연과 차를 매개로 아이들을 길러볼 생각이다. 미술 전공인 신 교감이 대안학교 교장으로 교육을 책임지고, 권 관장은 행정적으로 뒷받침하는 방식이다. 기존 교사 뒷편에 건물을 신축하고 대안학교에 걸맞는 프로그램을 만들 예정이다. 이들은 곧 제천부터 전국 각지의 우수 대안학교를 벤치마킹할 계획이다. 신 전 교감은 "차와 명상, 문인화, 서예, 서각 등 예술을 밑바탕에 깔아놓은 교육을 구상중"이라며 "제천의 대표적인 문화쉼터이자 청소년 교육기관으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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