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후커플의 지구별 신혼여행] 14. 히말라야 트래킹 - 푼힐 전망대

푼힐에서 바라본 마차푸차레 봉. 생선 꼬리를 닮아 Fish tail이라고도 부른다/ 후후커플

● 후후커플은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동반퇴사하고

1년 간 세계여행을 떠난 조현찬(32)·연혜진(28) 부부다.

네팔에 온 건 히말라야 트래킹에 도전하기 위해서였다. 히말라야라니, 이름만 들어도 두근거린다. 동네 뒷산도 헉헉거리며 올라가는 내가 히말라야라니. 감히 꿈꿔보지도 않았던 걸, 오빠와 여행을 시작하면서는 모두 현실로 다가왔다. 평소라면 절대 못 할 거라며 손사래를 칠 만한 것들에 도전하다니. 우리에겐 스쿠버다이빙에 이은 두 번째 도전이었다. 하지만 막상 포카라에 오니 덜컥 겁이 났다. 준비 기간이 길어질수록 더 겁날 것 같아, 일정보다 하루 앞당겨 출발하기로 했다.

고심 끝에 우리가 선택한 코스는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걸리는 푼힐-ABC 코스. 푼힐 전망대를 거쳐 ABC라 불리는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Annapurna Base Camp)를 다녀오는 코스다. 얇은 여름옷만 갖고 있던 우리는 고산지대에서의 트래킹을 위해 장비샵들을 돌아다니며 각종 방한복, 등산화, 트래킹 폴, 보온용품 등을 준비했다. 일주일간 우리와 함께할 포터 겸 가이드인 Tiltha와도 인사를 나누고, 트래킹 허가증인 팀스 퍼밋(TIMS permit)도 받았다. 모든 준비를 마쳤는데도 막상 트래킹 전날이 되자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번 떨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드디어 트래킹을 시작하는 날, 우리 배낭은 포터가 들어주고 간식이나 간단한 옷가지가 든 작은 가방은 오빠가 들었다. 작다곤 하지만 물 한 통과 수십 개의 초콜릿은 꽤 무거웠다. 가방을 두 개로 나눠 메려고 했는데, 괜찮다며 한사코 말리는 오빠. 그의 마음에 늘 고맙고 또 미안하다. 힘든 것 뻔히 아는데 내가 걱정할세라 웃으면서 뒤돌아주는 든든한 사람. 카메라만 달랑 목에 맨 나는 그런 오빠의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는다.

돌계단/ 후후커플

오전 11시 힐레에서부터 돌계단만 세 시간을 올라, 오후 2시 반쯤 울레리 마을에 도착했다. 아직 해가 중천인데 벌써 끝났나 했는데, 산에선 해가 빨리 지기 때문에 체온 유지와 컨디션을 위해 트래킹은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 이전에만 하는 게 좋단다. 히말라야 같은 고산지대에서는 하루에 너무 높이 올라가면 고산병에 걸릴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롯지 안에서는 저 멀리 히말라야 설산이 훤히 보였다. 방 창문에서 내다보이는 설산이라니. 창문 프레임을 액자삼아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보였다. 동네 산책도 하고 저녁까지 먹었는데도 시간이 남았다. 본격적인 트래킹을 위해 이른 저녁 8시 반에 침대에 누웠다. 방 안이라지만 사방에서 바람이 새어 들어와 추운 공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미리 배워온 대로, 뜨거운 물을 보온병에 담아 침낭 안에 미리 넣어두어 침낭 속을 따뜻하게 데웠다. 옷도 다섯 겹이나 입고 침낭 위에 또 두꺼운 이불을 덮었다. 미얀마에서 추워서 새벽에 몇 번이고 깼던 게 생각나, 이번엔 추위에 완전 무장했다.

돌계단을 오르며 짐을 나르는 나귀떼들을 만나다/ 후후커플

둘째날, 본격적인 트래킹이 시작되었다. 다음 지점인 고레파니(2,800m)까지는 고산병 위험이 시작되는 구간이라 조심해야 했다. 고산병은 해발 2500m 이상에서 두통이나 메스꺼움, 구토 증상이 오는 병으로, 체력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컨디션에 따라서 걸릴 수도 있고 안 걸릴 수도 있다. 한번 증세가 오면 더는 오르지 않고 멈추거나 아래로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예방이 특히 중요하다. 평소 멀미도 잘 걸리는 난데, 고산병도 잘 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물도 자주 마시고 호흡도 일정하게 하며, 조심 또 조심했다.

한참 걷다가 물소리가 들리면 나는 신나서 소리를 질렀다. 폭포나 계곡이 있으면 쏴아아아아아 하는 그 소리에 한껏 기분이 좋아졌다. 아아, 물소리가 이렇게 듣기 좋았던가. 끝도 없는 길을 걸으면서 나는 절로 자연의 소리에 귀가 기울여졌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부터 찌르르르 새소리, 물소리까지 그 모든 게 자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었다. 언제 이렇게 자연의 소리를 들어보았을까 생각하며 걷다보니 지루할 틈이 없었다.

오후 두 시, 목적지인 고레파니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트래킹은 할만했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산 오르는 것보다는 더 나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상까지 오르내리는데 왕복 7~8시간까지도 걷는데, 여기서는 해가 빨리 져 기온이 떨어지기 때문에 하루 5~6시간만 걷는다. 힘들긴 해도, 충분한 휴식시간과 잠자는 시간이 보장된다는 거다.

잠시 쉬어가기로 한 롯지/ 후후커플

게다가 푼힐-ABC코스는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코스여서 인지, 중간중간 쉬었다 갈 롯지가 많았다. 걷다가 지칠 때면 따뜻한 블랙 티를 마시면서 체온 유지를 하고 다시 길을 걸었다. 몸이 무리하지 않을 정도로 조심하면서 걸어가면 되었다.

셋째 날 아침 5시 반, 씻지도 못하고 나갈 채비를 했다. 드디어 푼힐 전망대에 올라 일출을 보는 날이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빈속인 데다 끝도 없이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고 있자니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어둠에 앞도 잘 안 보이는데 랜턴 역할을 하던 휴대폰마저 꺼져서 눈길에 자꾸 발이 미끄러졌다. 계단 30개도 오르기 전에 쉬다가 또 조금 걷다 쉬면서 올라가다 보니 벌써 주위가 밝아지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와서 일출을 놓칠 수 없어 조바심이 나면서도,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냥 내려가고 싶을 정도로,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얼른 올라가야 한다고! 사람들이 말하던 푼힐 공포의 돌계단답게, 나에겐 그 1시간이 정말 '공포'였다.

그렇게 해발 3,210m 푼힐(Poon hill)에 올랐다. 왜 이름이 푼힐인가 하니, 네팔 사람들에겐 이 정도 높이는 산이 아니라 '언덕'(Hill)이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 높이도 1,900m 정도라고 이야기하면, 네팔리들이 웃는다. 그건 산이 아니라 언덕이라고. 그렇게 나는 울기 일보 직전에 '언덕'에 올랐다. 겨우 3일차 푼힐 전망대에 오른 것뿐인데, 벌써 트래킹을 다 마친 것처럼 그렇게 뿌듯하고 시원할 수가 없었다.

저 멀리 산 사이로 황금 같은 해가 떠오르고, 그 빛에 하얀 히말라야 설산들이 반짝였다. 안나푸르나 1봉, 안나푸르나 남봉, 힘출리, 마차푸차레(Fish tail)까지 히말라야 산맥들이 파노라마처럼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조금씩 분홍색으로, 주황색으로, 빨간색으로 물들어갔다. 사진에서도, 그림에서도 본 적이 없던 광경이었다. 아니, 그 누가 이걸 담을 수 있을까. 우리가 이걸 보기 위해 이곳에 왔구나. 불과 30분 전만 해도 일출이고 뭐고 트래킹을 포기해버리고 싶었던 그 모든 힘든 순간들이 거짓말처럼 잊혔다.

지난 이틀간 길에서 만나 인사를 주고받았던 한국인 여행자를 모두 만났다. 한 분씩 따로 오셨지만, 다 같이 핫초코를 마시며 푼힐에 오른 우리의 첫 기쁨을 나눴다. "아이구, 수고하셨습니다!" 여기까지 올라오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설레고 벅찬 심정인지 목소리 높여 말하지 않아도 되었다. 취업 스트레스를 받는 여대생부터 직장에 치여 삶의 여유를 찾기 어려웠던 아저씨까지. 우리 모두에게 이 트래킹은 한국에서의 퍽퍽한 삶으로부터의 도피처였지만, 결국엔 스스로 일어설 용기를 얻었던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살면서 힘들어 절망하게 될 때, 오늘 이 벅찬 순간을 부디 기억하기를. 그리고 다시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갈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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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후커플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이야기 (보너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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