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주항아리에서 길어올린 '시원(始原)의 기억들'

제 1 전시장

[중부매일 송창희 기자] 전시장을 가득 메운 수 백점의 해주항아리들과 허공에서 넘실대는 짙푸른 문양들. 이번 스페이스몸 미술관 전시장은 웅성거림으로 가득 차 있는 듯하다.

지난 5월 19일 개막해 오는 6월 8일까지 열리는 '이종목이 만난 해주'展. 이번 전시는 지난해 5월 열렸던 이종목, 이승희 작가 초대전 '불이 不二 - 물과 불'이 인연이 되어 개최되는 개인전이다.

스페이스몸 미술관(관장 서경덕)은 이번 전시를 시작으로 '사물사고 시리즈'를 올 한해동안 총 4차례 진행할 계획이다.

이종목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거침없는 필선과 형상들과, 해주항아리가 발산하는 대담하고 강렬한 자의식의 결합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과 글씨, 그림과 항아리, 글씨와 문양이 어우러진 난장과도 같은 기운생동의 분위기가 바로 생명의 핵심인 무질서와 혼돈의 자연스런 표현임을 전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이렇게 100여 년 전의 항아리들과 나눈 교감의 결과를 펼쳐놓고 있다.

제 3 전시장

해주항아리는 황해도 해주지역에서 제작한 독특한 형식의 옹기다. 토기, 금속, 사기, 도자기, 유리등 재질이 다양하고 하얀 바탕에 용, 물고기, 모란꽃, 누각, 수복(壽福)문양을 화려하고 대담하게 그려 넣은 것이 특징이다.

오래 전 해주백자 전시장에 처음 들어선 순간 이종목 작가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呻吟)이 흘러나왔다고 한다. 그는 "소리가 삽시간에 온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가 모든 것을 건드리는 느낌이 신음인 것이며, 그 순간은 내 안의 신(神)과 만난 순간이었고 태초부터 축적되어 온 수많은 기억들이 깨어나는 찰나이기도 했다"고 전하고 있다.

1980년대 중반 한국화단에서 탈장르의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던 시기에 작가로 데뷔한 그는 '새롭게 인식되는 동양화의 정신원리와 체득된 서구적 시방식과의 괴리가 주는 고통'을 직시했고 그 문제의 해결에 뛰어들었다. 이를 위해 그는 동양적 자연관과 우주관에 대해 천착하며 다양한 매재 및 기법실험, 즉 서양 안료와 나이프, 철과 동(銅)가루, 삼베, 광목 등의 매재 사용과 만화나 사진 꼴라주 등의 기법 실험을 동시에 시도했다.

먹에 대한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와 같은 역사적 개념에서부터 정신과 물질, 직관과 분석, 자연과 문명, 삶과 죽음 등이 당시 그가 뛰어넘고자 했던 것이었다. 근대와 전통에 대한 재사유, 동양의 위상과 가치에 대한 재평가, 서양과 동양의 안과 바깥을 다시 묻는 과정을 통해 그가 도달한 지점은 근대문명의 수용 이후 망각되어온 사물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방식, 즉 대상과 주체, 자연과 인간을 근원적으로 합일된 존재로 인식해 왔던 관점, 그 기억을 되살리는 일이었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그렇게 동양과 서양 기법의 다양한 실험후 어느 순간 다시 되돌아온 동양의 전통적인 산수의 세계, 즉 "한국화는 그 자체가 일종의 구도 행위"를 펼쳐보이고 있다. 그를 통해 모든 사물의 존엄성을 인정하며 공존을 강조하는 세계관이 바로 구도의 삶이며 중용의 발현이라는 자신의 예술관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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