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인사청문회를 마친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가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연수원에 마련된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2017.05.26. / 뉴시스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표는 한때 유력한 대권주자였다. 지난 2000년, 당시 이 전대표가 충북도청을 방문했을 때는 대통령 초두순시를 방불케 했다. 16대 총선을 앞두고 눈도장을 찍기 위해서 수십 명의 소속 의원들이 앞 다퉈 수행했던 광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하지만 그에겐 결정적인 아킬레스건이 있었다. 자식문제다. 아들 둘이 모두 병역을 면제받았다. 이 전대표는 나중에 사기로 밝혀진 김대업 병풍사건까지 겹쳐서 대권 일보직전에서 좌절했다. 두차례 대선에서 실패한 이 전대표의 심정은 안봐도 뻔하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마음고생이 심했던 사람은 두 명의 아들이었을 것이다. 잘난 아버지 때문에 온갖 수모를 당했기 때문이다.

지난 2004년 대선을 앞두고 대법원은 '179cm, 45kg 인간 미이라'라는 책을 출간해 이회창 후보를 비방한 혐의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 김모씨에게 징역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김씨는 이 책에서 키 179cm에 몸무게 45kg의 신체조건을 가진 인간이 의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 외에 병역비리에 해당한다는 주장 등을 했으나 기록에 나타난 모든 자료를 종합해 봐도 진실이라는 입증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김씨는 대선 직전인 2002년 11월 말 "179cm의 키에 45kg의 몸무게를 지닌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미이라"라는 내용이 담긴 책 4000여부를 서점에 배포했다. 이 후보의 장남을 겨냥한 것이다.

차남도 고난을 겪었다. 2002년 총선때 국민의신당에서 수연씨의 키조작을 통한 병역면제의혹을 제기하자 내외신기자 100여명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키를 잰 것이다. 당시 신장은 164.5cm, 몸무게는 50kg을 미달했다. 수연씨는 측정을 마친뒤 "제 키가 문제가 되고 의혹이 생기는 것이 답답하다"고 했다. 군대를 갈 수 없었던 신체적인 결함이 유력 후보인 아버지 때문에 선거쟁점으로 등장하고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으니 당시 20대 청년이었던 자식들은 큰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최근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가 아들 병역 면제와 관련, "못난 자식을 둬서 미안하다"며 "저도 죄인된 심정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제 나름대로는 제때에 (아들을) 군대에 보내기 위해서 몸부림을 쳤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아들은 2002년 어깨 탈골로 인해 병역 면제 판정을 받은 뒤 재신검을 받으려 했지만 이듬해 뇌하수체에 종양이 발견돼 뇌수술을 하면서 포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굳이 '못난자식'이라고 표현한 것은 심한 것 같다. 입대하고 싶어도 건강상 이유로 못간 자식의 심정도 헤아려야 하지 않을까. 더 황당한 것은 이낙연 후보에게 "아들의 어깨 탈골 CT·MRI 사진과 건강보험심의위원회 핵심 자료'를 요구했던 경대수(자유한국당) 의원의 아들도 질병을 사유로 군대면제 판정을 받은 것이다. 최근 최민식이 열연한 영화 '특별시민'에선 아버지의 서울시장 재선을 돕기 위해 딸이 아버지가 저지른 음주뺑소니사고까지 뒤집어쓴다. 과장된 설정이지만 유명정치인의 자식으로 사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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