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터운 겨울옷은 이미 세탁소를 다녀와 옷장 깊숙한 곳에 자리를 차지했고, 말갛게 닦아놓은 유리창을 바라보며 봄을 기다리는 마음에 꽃샘바람이 불었다. 긴 겨울이 지루해 성급하게 봄을 기다리노라면 지난해 이맘때의 혹독한 꽃샘추위는 늘 잊어버리기 마련인가보다.
 해마다 3월이면, 부지런을 떨며 손질을 해서 넣어놓은 겨울옷을 다시 꺼내 입는 일을 반복하면서도 번번이 같은 실수를 하곤 한다.
 어려서부터 꽃샘바람만 불면 몸이 아팠다. 멀쩡하게 돌아다니다가도 느닷없이 힘이 쭉 빠져 들어와 누우면 어머니는, 우리 셋째, 또 꾀병 시작이구나 하셨다. 갑자기 세상이 허무해지고, 까닭도 없이 주위의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어 골방에 들어앉아 눈물을 찍어내곤 하였다.
 서너 차례 봄비와 함께 꽃샘바람이 지나가는 동안 몇 번이나 눈물바람을 하고 식은땀을 흘리며 호된 몸살을 앓고 나면 어느새 봄은 연초록 융단을 깔아놓고 화사한 목소리로 나를 불러대는 것이었다. 몸살 후 맞이하는 봄은 눈물겨웠다.
 햇빛 찬란한 봄을 앞두고 느슨해지는 마음을 다시 한 번 잡아 흔드는 심술궂은 꽃샘바람은 마치 지나간 계절의 긴장감을 잊지 말라는 메시지처럼 여겨진다. 지난 2월은 온 국민이 혹독한 슬픔을 겪었다. 매시간마다 TV뉴스를 틀어놓고 몸서리를 치며 연신 눈물을 닦아냈다. 구조대원의 긴박한 몸짓에, 아빠, 오지마… 자신은 죽어가면서도, 위험하니 아빠는 오지 말라는 딸의 마지막 한 마디…. 유독가스의 검은 그을음에 그을린 채 실신하여 업혀 나오는 죄 없는 사람들의 애처로움에, 그럼에도 인명구출보다 증거인멸에 급급한 대다수 무리들의 작태를 지켜보며 통분을 금치 못했다.
 이제 새 정부의 출범으로 새로운 역사의 첫 페이지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릫참여정부릮는 릫지나간 계절릮의 슬픔을 결코 잊지 않는 정부이길, 혹독한 바람 지나간 국토에 안정의 꽃, 평화의 꽃, 민초 참여의 꽃을 무궁하게 피워내는 정부이기를, 환호 속에 청와대로 입성했듯이 환호 속에 청와대를 걸어나오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꽃샘바람이 지나고 나면 봄 햇살은 더욱 따사롭고 봄빛은 더욱 화사할 것이다. 신년에 못지 않은 새 희망이 열리는 계절이다.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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