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4월 1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을 나서고 있다. 법원은 이날 우 전 수석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2017.04.12. / 뉴시스

3년전 국립과학원이 전국 273개 가구의 수돗물과 정수기물을 조사했다. 조사결과는 의외였다. 수돗물은 모두 음용수로 적합했지만 정수기물은 절반가까이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수돗물은 이제껏 가정에서 주로 세탁이나 설거지할 때만 쓰는 물로 홀대받았다. 수돗물을 강이나 호수에서 취수할 때부터 싱크대 수돗꼭지를 통해 쏟아질 때까지 과정을 살펴보면 정수기보다 못할게 하나도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중 수돗물을 직접 마시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K-water가 조사한 수돗물 직접 음용률은 6% 미만이었다. 선진국(미국 56%, 캐나다 47%, 일본 33%)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치다. 반면 먹는 물 시장은 해마다 커져 올해는 1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왜 멀쩡한 수돗물을 놔두고 생수를 사먹고 적합도도 의심스러운 정수기를 들여놓을까. 이는 막연하고 과도한 수돗물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 탓이다.

수돗물을 정부에 대한 불신을 비교하면 '새 발의 피'다. 돈으로 환산하기 힘들만큼 우리사회에 엄청난 타격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굉장히 우려할만한 상황이지만 우리사회에 국가에 대한 불신이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는 사례는 많다.

하지만 불신에 이르기까지 국가지도자의 불통도 한 몫 한다. '불통'과 '독선'은 박근혜 전대통령을 상징하는 단어다. 언로(言路)가 막히면 불통이 된다. 내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면 독선이 된다. 사람과 고릴라의 가장 큰 차이는 혀의 길이다. 인간은 혀를 통한 대화와 타협으로 고릴라에 비해 분쟁을 1만5천분의 1로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혀가 짧은 고릴라의 세계는 힘으로 밀어 붙이는 승자독식의 사회가 된 반면 인간은 혀를 통해 법과 제도가 있는 효율적인 사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정부와 국민도 의사소통에 실패하면 불신을 낳는다. 4년 전에 우리사회를 강타한 세월호 참사로 국가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했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위기에 처할때 국가가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은 세월호 참사이전엔 46.8% 였으나 그 이후에는 7.7%로 뚝 떨어졌다. 특히 법과 제도가 공정성을 상실하면서 41개 OECD 국가중 사법제도 신뢰도순위는 39위였다. 법꾸라지라는 말을 듣는 우병우 전청와대민정수석이 아직도 건재한 것을 보면 불신을 받는 이유는 충분히 있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얼마 전 성균관대 SSK위험커뮤니케이션연구단이 '우리는 얼마나 믿을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가'라는 주제로 한국 사회 신뢰 수준을 측정하는 국민 인식 조사를 진행했다. 관심을 끈것은 우리 사회에 심각한 사건·사고/재난·재해 등 위험 상황이 발생했을 때 도움에 대한 기대 수준을 알아본 결과 가족(57.1점)이 가장 높았다. 반면 '국가(정부)' 28.1점으로 가장 낮았다. 이어 언론(29.3점)과 시민사회(33.4점) 순이었다. 가족에 대한 믿음은 한편으론 긍정적이지만 국가와 사회에 대한 불신이 이 정도라면 심각하다.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성공하는 국가는 사회구성원들이 서로 믿고 협동하는 사회적 자본이 풍부한 나라"라고 했다. 불신사회를 탈피하지 못한다면 경제력이 좋아져도 2류 국가를 탈피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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