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희 수필가

그와 동거를 한지 1년쯤 된 것 같다. 관계라는 것이 너무 가까우면 불편하고 너무 멀어도 소원하여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냈는데 진력이 나기 시작했다.

그는 귀화를 했는데 인도가 고향이라고도 하고 다른 열대 아시아라고도 한다.

"좋은 사람도 오랫동안 만나보면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20~30퍼센트씩은 섞여 있다. 행복은 마음에 들지 않는 20~30퍼센트를 바꾸려고 하기 보다 내가 좋아하는 70~80퍼센트에 더 집중할 때 커진다."라는 혜민 스님의 시를 접하게 되었다.

처음 만났을 때 그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 매일 볼 수 있고 해가 드는 지척에 그만의 방을 만들어 주었다.

그 방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얼마 동안은 죽은 듯 미동도 하지 않아 애를 태웠다. 그것이 미안해서인지 주거하는 공간이 좁은데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날마다 일찍 일어나 싱그러움을 주기 시작했다. 여린 몸으로 곁에 있는 누구라도 가차없이 감아 올라가 저렇게 무지막지한 데가 있나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러더니 1년 전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아름다운 모습을 재현하고 새벽에 나타나 활짝 웃는다. 하도 신기하고 대견하여 아침마다 먼저 일어나 그를 맞으려 했으나 워낙 부지런하여 내 정도의 근면으로는 그럴 수 없었다. 그는 원래 2미터 이상의 장신인데 기거하는 환경에 맞게 20센티미터가 못 되는 앙증맞은 모습으로 꽃을 피웠다. 모양이 나팔 같아서 나팔꽃이라 하고 아침에 핀다 하여 영어권에서는 모닝 글로리라고 부른다.

관심을 가지고 보니 두세 시가 되면 햇볕을 부끄러워하며 동료에게 그 빛나는 자리를 양보하고 온몸을 오그려서 닫는다. 곁에 있는 이가 누구든 붙들고 뻗어갈 때는 안하무인 듯 보여 밉광스러웠다. 하지만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것을 알고 종족 보존을 위해 처연하게 퇴장을 한다. 하루살이보다도 더 짧은 일생이라 보는 사람을 먹먹하게 한다.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꽃말이'기쁨'이면서 왜'덧없는 사랑'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연약하지만 결단성이 대단한 그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돌진을 하고, 이루고 난 다음에는 절대로 집착하거나 미련을 두지 않는다. 이제껏 주위를 배려하지 않고 산 것에 보상이라도 하듯 꽃자리를 동료에게 내주는 배포를 보여 준다. 한나절 만에 생을 고이 마감하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2세를 위한 씨방을 남기는 것이다. 그 씨는 필요한 사람들에게 견우자란 한약재로 유용하게 쓰이기도 한다.

옛날에는 나팔꽃 씨앗을 주고 그 대가로 소 한 마리를 끌고 왔기 때문에 견우자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갱년기장애, 화농성관절염, 관절통, 동상, 류머티즘, 방광염, 식체, 변비를 치료하는 가정상비약으로 주로 운동계 질환과 음식 체증을 다스린다. 나팔꽃의 잎은 미량의 대기오염물질인 오존, 이산화황, 옥시던트 등에 민감한 반응으로, 잎의 표면에 붉은 반점을 형성하여 환경오염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 미세먼지를 걱정하는 요즈음 꽃도 보고 환경오염 측정도 하게 하니 시대에 맞는 화초이지 싶다.

한나절 밖에 살지 못하는 애잔한 꽃이라 그런지 전해지는 이야기도 슬프다. 어느 마을에 아리따운 요조숙녀와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가 살고 있었다. 둘 사이가 매우 행복하자 이를 시기한 원님이 엉뚱하게 옭아매어 아내를 감옥에 가두었다. 아내를 보고 싶어 애를 태우던 남편은 자기가 그린 그림을 원님이 살고 있는 담장 아래에 묻은 후 목숨을 끊었다. 그날 밤 남편의 꿈을 꾼 아내는 아침에 밖을 내다보고 담벼락을 타고 올라와 핀 나팔 모양의 꽃을 보았고 죽은 남편을 생각하며 꿋꿋이 살았다고 한다.

나팔꽃은 일찍 피었다가 빨리 시들기 때문에 바람둥이 꽃이라 하여 미망인이 심기를 꺼렸다고 한다. 일부종사를 하고 온전히 하루를 살지 못한 것도 안타까운데 그 별명은 사절하고 싶다면 비약이 될지.

얼마 전까지 화려한 꽃동산을 만들어 감탄을 자아내게 하던 영산홍이, 농약 비를 맞은 듯 하루아침에 폐가처럼 주저앉았다. 바늘 끝만 한 흠도 나지 않고 뚝 떨어져 생을 마감한다고 노래한 목련도 오염된 환경 때문인지 꽃잎이 칙칙하게 나뒹군다.

그에 비하면 한나절 싱싱하게 예쁜 모습만 보여주고 추하지 않게 사라지는 나팔꽃은 하얀 소복의 청상처럼 애처롭고 보호본능을 자극한다. 나팔꽃의 고운 모습만 보아 선지 그와 같은 뒷모습으로 그리움을 남기고 싶다.

# 약력
▶1998년'한맥문학' 신인상
▶충북수필문학회, 한맥문학회 회원, 청풍문학회 회장 역임
▶수필집 '칡꽃 향기'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충청북도교육청 방과후학교 지원단장 역임
▶현재 청주시 1인 1책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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