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미영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

위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으로 해당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자료사진 (클립아트코리아)

내가 아는 지인 중에는 어릴 때 이른바 왕따를 경험한 사람이 있다. 그 당시에는 아직 왕따라는 말이 사회적으로 정의 내려지기도 전이라 그저 친구들 때문에 몹시 괴롭다라는 생각을 했을 뿐이라고 한다. 친구들이 자신의 이야기에 일부러 대답을 안 하고, 일부러 자신만 빼놓고 자기들끼리 웃으며 몰려다니는 정도의 일이 몇 달간 지속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인은 나이가 더 들어 흰머리가 내려앉은 시기에 그때 왕따를 주도했던 친구를 우연히 길에서 만났다고 한다. 지인은 평생 단 한 차례도 타인을 폭행하거나 상스러운 욕을 한 적이 없는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인데, 아무렇지도 않게 '잘 지냈느냐, 반갑다'고 인사하는 어린 시절의 친구를 문득 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스스로 깜짝 놀랐다고 한다. 스스로에게 스친 생각만으로도 너무 놀란 나머지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허둥지둥 그 자리를 피했다고 한다. 이처럼 왕따 문제는 시간이 지난다고 쉽게 잊혀지는 문제가 아니다.

변호사 업무를 하다보니, 심리적인 따돌림 수준을 넘어서 육체적인 괴롭힘에 이르는 학교폭력사건을 자주 보게 된다. 대부분의 부모는 명확한 육체적인 괴롭힘의 단계에 이르러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는다. 피해학생의 부모는 힘들어 하는 자녀에게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에 가면 다 해결된다'라는 어줍지 않은 위로 따위를 더 이상 하지 않고 진정으로 아이의 안색을 살피게 되고, 가해학생의 부모도 '우리 애는 그런 애 아니다'라는 오만한 자신감에서 벗어나 '친구에게 그러면 안되'라는 마땅히 가르쳐야 하는 훈육을 뒤늦게 시작하게 된다.

몇 년 전, 한 부모가 얼굴이 창백하다 못해 푸른 빛이 도는 학생을 데리고 사무실을 찾아온 적이 있다. 같은 반 다수의 학생이 한 학생을 수시로 노려보고, 자기들끼리 정한 별칭을 부르며 비아냥대는 식의 은근한 괴롭힘이 지속되었다고 한다. 어린 학생이 얼마나 정신적으로 괴로웠으면 학교에서 쓰러졌을까 싶어 마음이 무척 아팠다. 학교는 같은 반 아이들이 노려본 것에 관한 명확한 증거도 없고, 가해학생들에게 물어보니 비아냥대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그날 공부한 내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뿐이라고 진술한다며 '처벌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현했고, 가해학생들의 부모는 처벌할 수 없다는 학교의 입장에 힘입어 곧바로 자신의 아이들이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친구를 노려보며 괴롭힌 것이 아니냐'라는 의심을 받게 되어 괴로웠다며 피해학생의 부모를 상대로 정신적 위자료를 배상하라며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부모에게 자식이 어떤 존재인지, 얼마나 귀한지, 필자도 자식을 키우고 있는 부모로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가해 부모의 입장에서, 내 아이가 다른 학생들과 더불어 한 학생을 노려보며 괴롭힐 리가 없는데, 학교 선생님 앞에서 '노려보지 않았고, 놀리지 않았다'는 진술을 해야했다고 생각하면 참 속상하기도 하겠다 싶으면서도, 어찌되었든 정신적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구급대원의 도움을 받으며 실려나간 피해학생의 부모를 상대로 위자료를 구하는 소송까지 내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에 관하여는 회의적인 의문이 들었다. 물론 가해학생들이 진실로 피해학생을 노려보거나 놀릴 의사가 없었을 수도 있고, 그래서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같은 반 친구가 자신들의 탓이 아니라 하더라도 교실에서 쓰러질 정도로 괴로워하고 있다면, 그 친구를 도와줄 방법이 없는지 한 번 고민해 보도록 지도해줄 수 있는 어른이 있었다면 좋았을텐데라는 이쉬움이 남았다.

이미영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

담임교사는 가해학생에게 '지금부터는 잘잘못을 떠나 같은 반 친구의 고통을 살펴보자'라는 인간적인 가르침을, 가해학생의 부모는 자녀에게 '혐의없음 판단을 받았으니, 위자료를 구해주마'라는 식의 차가운 법적 대응보다는 '이제부터는 같은 반 친구가 무슨 이유에서든 쓰러질 정도로 괴롭다면 도와줄 방법을 찾아보는 마음을 갖자'라는 좀 더 따뜻한 가르침을 주는 편이 좋지 않을까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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