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문재인의 운명' 자료사진 / 뉴시스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의외의 인물이 선정돼 화제를 모았다. 노래하는 '음유(吟遊)시인'으로 불리는 미국의 대중가수 '밥 딜런'이다. 문화계 일각에선 가수가 노벨문학상을 받는 것이 과연 타당하냐는 말도 나왔지만 시(詩)적이면서도 반전 메시지와 시대정신을 담은 가사를 직접 쓴 '밥 딜런'은 충분히 수상자격이 있다는 여론이 대세였다. 노벨문학상의 파격은 밥 딜런 뿐만 아니다. 영국수상을 지낸 윈스턴 처칠도 1953년 논픽션의 걸작인 2차 대전 회고록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문학상 후보 8전9기의 영예였다. 정치인이라는 이력 때문에 수상이 늦어졌다는 말도 있다. 처질은 수단 분쟁 참전을 바탕으로 쓴 '강의 전쟁'을 비롯한 몇 권의 역사서로 필력을 인정받은 작가이기도 하다.

최근 정치인중에는 버락 오바마의 저서가 눈에 띤다. 오바마가 1995년에 쓴 자서전 '내 아버지의 꿈'과 2006년에 쓴 '담대한 희망'은 상당기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두 권의 책은 정치새내기 오바마를 전국적인 정치인으로 부상시키며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다. 오바마의 성공으로 그가 그토록 닮고 싶어 했던 링컨과 루즈벨트 전기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정치인들은 저서를 통해 굴곡진 인생 역정과 정치철학을 국민에게 알리는 유효한 수단으로 삼는다. 자신의 경륜과 포부를 녹여내 정책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치인의 저서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사례는 거의 없다.

이런 점에서 최근 서점가에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하 문재인)의 저서 '문재인의 운명'은 이례적이다. 국내에서 정치인의 저서가 3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것은 흔치않다. 대통령 저서로서는 처음이다. 한동안 대선에 도전했던 유력 정치인들의 저서가 붐을 이룬 적이 있었다. 최근 몇 년새 출간된 안철수 전 의원의 <안철수의 생각>을 비롯, 박근혜 전대통령의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 김두관 의원의 <아래에서부터>, 손학규 전 의원의 <저녁이 있는 삶>, 김문수 전경기지사의 <어디로 모실까요?> 등 자신들의 정치철학을 담은 책을 펴냈지만 '문재인의 운명'만큼 화제를 모으지는 못했다.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이후 2년만인 2011년 출간됐던 '문재인의 운명'은 당시에도 출간 하루만에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알라딘, 예스24 등 주요 서점들은 쏟아지는 주문을 처리하지 못해 책 사재기에 나서기도 했다. 정치인의 책은 안팔린다"는 한국 출판계의 불문율을 깨트린 것이다. 이 책은 요즘 도서관에서도 품귀현상을 보이고 있다. '대출예약이 꽉 차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현상은 노무현의 친구이자 동반자로 대중적인 신뢰를 얻은 문재인이 '인간 노무현'을 지근거리에서 바라보며 정직하고 성실하게 이야기를 들려줄 거라는 기대감이 독자들을 불러 모은 것으로 보인다. 참여정부때 정치라는 무대에서 내려온 문재인을 다시 '정치의 세계'로 끌어올린 동력이 '노무현'과 'MB'였다. '대권에 대한 대망(大望)'을 갖게 한 것은 국민들의 MB정부에 대한 실망과 '노무현에 대한 향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판단한 것 같다. 대선에서 한번 좌절했지만 박근혜의 실패는 문재인에겐 운명같은 기회였다. 요즘 문재인 정부의 '정치개혁'과 '검찰개혁'에는 '노무현의 좌절된 꿈'을 되살리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는 마지막 문장은 문재인의 권력 의지를 말해준다. 이미 국민들은 '노무현식 정치'와 '이명박·박근혜식 정치'의 한계를 모두 맛보았다. 민생을 외면한 이념정치, 공정을 가장한 부패정치, 독선적인 불통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이 때문에 국민들의 정치적인 욕구를 해소시키기는 더 힘들다. 취임후 지지율이 80%를 넘나들고 있지만 국민의 높아진 눈높이에 맞춰 문재인의 도전이 얼마나 결실을 이룰지 궁금하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문재인은 '문재인의 운명' 서문에서 "이제 우리는 노무현 시대를 넘어선 다음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충격, 비통, 분노, 서러움, 연민, 추억 같은 감성을 가슴 한구석에 소중히 묻어두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냉정하게 시작해야 한다"고 썼다. 넘어서야 할것은 노무현 시대뿐만 아니라 이명박·박근혜시대도 있다. 하지만 시대적인 갈등을 치유하고 봉합하려면 포용과 화합의 리더십도 절실하다. 변화와 소통의 아이콘인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가장 존경했다는 링컨의 정신은 국익·통합·포용이었다. 150여년이 지난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유효한 정신이다. 대통령 인생의 성패는 주로 집권 5년에 달렸다. 5년후 '문재인의 운명'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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