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청주시문화재단 컨텐츠진흥팀장

위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으로 해당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자료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일자리가 화두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공약이고 취임과 함께 일자리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취업걱정을 덜게 하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며 부의 격차를 줄여나가겠다는 의지가 반영돼 있다. 당장 추경부터 편성해 일자리 창출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니 그 의지가 현실이 되길 갈망한다.

그렇지만 안정적이고 체계적인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사회의 구조적인 모순부터 개선하고 다양한 정책과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공공부문의 뼈를 깎는 개혁, 대학을 비롯한 교육제도 혁신, 4차산업 등 전문인력 양성, 양성평등, 평생학습 시스템, 기업의 건전성 확보 등 할 일 많고 갈 길 멀다.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포퓰리즘과 근시안적인 행정을 접고 창의적이며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다.

그 답을 현장에서 찾으면 좋겠다. 청주첨단문화산업단지 2층에는 올 봄부터 100세디자인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말 그대로 100세 시대에 행복한 삶을 꿈꾸기 위해 고민하며 그 꿈을 담금질 하는 곳이다. 20대 대학생에서부터 80대 할머니까지 150여 명의 시민들이 이용하고 있는데 도자, 옻칠, 유리, 규방, 한지, 귀금속, 주얼리, LED종이플라워 등 10여개 공예강좌와 동아리가 있다.

이곳은 행복을 설계하는 곳이다. 행복한 교육, 행복한 공동체, 행복한 놀이, 행복한 일자리를 추구한다. 전문강사와 함께 맞춤형 교육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참가자간의 소통과 교감을 통해 그 성과를 극대화 한다. 창업·창직을 위한 컨설팅과 선진지 벤치마킹도 병행한다. 성과물은 올 가을 청주공예비엔날레에 소개될 것이며 동아리 활동과 소규모 창업으로 이어진다.

대학에서 중국통상학과를 다니고 있는 21살 청년 A씨는 이곳에서 옻칠강좌를 배우고 있다. 제도권 안의 교육만으로는 자신의 꿈을 일굴 수 없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인데 졸업 후에 공방창업을 꿈꾼다. 50대 주부 B씨는 가죽공예를 배우면서 삶의 행복지수가 높아졌다. 짧은 시간에 많은 기술을 습득하고 다양한 문화상품을 만들었다. 평생을 주부로, 엄마로, 아내로만 살아왔는데 전업작가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60대 전직교사 C씨는 퇴직 후 삶이 지루하고 막막했다. 영혼까지 느슨해지는 것 같아 일자리를 찾아보았지만 그리 녹록치 않았다. 100세디자인센터를 노크했고 규방공예 강좌에서 손바느질을 하고 있다.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조각보를 만들고 식탁보 등 소품도 만들었다. 잠자던 능력이 깨어나기 시작했고 손수 만든 작품으로 거실과 주방 등을 꾸미니 삶의 향기 가득했다. 유리공예를 배우고 있는 80대 할머니는 수강생 중 최고령자다. 처음에는 늙은이가 뭘 할 수 있을까 망설였지만 며느리의 적극적인 권유로 함께 배우면서 삶의 마디와 마디에 감동의 엔돌핀과 도파민이 생겼다. 80대 노인이 램프워킹을 통해 유리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가슴 뛰는 일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이를 통해 경제적 가치를 일구며, 사랑과 감동과 행복이 삶에 스밀 수 있다면 이보다 더 값진 일이 있을까. 100세디자인센터는 꿈이 현실이 되는 곳이다. 다양한 기술과 재능을 통해 멋진 작품을 만들고, 삶을 아름답고 윤택하게 꾸미며, 문화상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창업도 할 수 있다. 동아리를 통해 공동체의 가치를 만들어 가며 전시나 페어에도 참여할 수 있다. 그 어떤 일자리보다도 값지고 행복한 일자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변광섭 청주시문화재단 컨텐츠진흥팀장

다니엘 핑크는 <새로운 미래의 조건>에서 디자인, 스토리, 조화, 공감, 놀이, 의미를 강조했다. 기능보다는 디자인으로 승부해야 하며, 단순한 주장보다는 스토리를 겸비하자는 것이다. 집중보다는 조화를 이루어야 하고, 논리보다는 공감을, 진지함보다는 놀이가 필요하며, 물질의 축적보다는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100세를 준비하는 공예적 활동이야말로 진정한 일자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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