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순덕 수필가

위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으로 해당 기사와 직접적 연관이 없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우리 집 앞에는 커다란 아름드리 참죽나무가 서 있다. 큰 나무 때문인지 그곳에는 온갖 잡새들이 날아들어 다른 곳에 비해 유난히 새가 많은 곳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도 많이 찾아 먹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새벽을 깨우는 소리는 먹이를 찾는 새소리로 시작된다. 아침에 들려오는 새소리 또한 가지각색이다. 천둥을 몰고 오는 소리처럼 그르렁 거리는 소리도 있고 휘파람 소리처럼 날렵한 소리도 있다. 온전히 깨어 있을 때 보다 반쯤 수면 상태에서 들려오는 새 소리는 은근히 미소를 머금게 하는 평온함과 행복을 준다.

그런 새들에게 종 주먹을 들이댄 것은 시도 때도 없이 무례하게 싸지르는 새똥 때문이었다. 참죽나무까지 가로지르는 우리 집 데크 위가 새들에게는 공중화장실이었는지 하얗게 떨어진 새똥이 흉물스러웠다. 미처 물로 씻어내지 못하였을 때는 검보라색으로 들러붙어 잘 떨어지지도 않았다. 날아가는 새 한 마리 한 마리를 잡아다 속옷을 입혀주고 싶을 정도로 새똥에 시달렸다.

며칠 전에는 가뭄에 타들어가는 식물들에게 물을 주던 남편이 어깨 위에 새똥 테러를 당하기도 하였다. 물어오라는 박 씨는 가져다주지 않고 배설물만 투척한 것이다. 괘씸한 마음이었지만 새똥을 맞으면 운이 좋다는 속설에 슬며시 복권에 당첨되는 행복한 공상도 펼쳐 보았다. 운이 좋다는 말은 아마도 새똥 맞을 확률이 그다지 높지 않기 때문에 생겨난 말일 것이다. 동화 속에서처럼 박 씨를 물어다 주기를 기다린 데는 사연이 있다.

지난해 이른 봄 즈음. 그날도 새소리에 잠이 깨어 새벽의 신선한 공기에 감사하며 뒤란을 돌아보던 중이었다. 그런데 저만치 땅에 떨어져 있는 낯익은 물체에 순간 소름이 돋았다. 엊그제 유리창에 머리를 박고 죽어간 새의 모습이 아직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는데 또 새가 떨어져 있는 것에 놀란 나는 다급하게 남편을 불렀다. 남편은 "아직 살아있네?"하며 살며시 손안에 안아 손바닥으로 온기를 전해주었다. 손바닥 위에서 한참 숨고르기를 한 작은 새는 기력을 찾았는지 푸드덕 일어나 남편의 손가락위에 자리를 잡았다. 뒤란에는 유리창이 없어서 서식처가 존재하는 것처럼 착시가 일어난 것도 아닐 텐데 어쩌다 방향 감각을 잃고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 건지 알 수 없었다.

까만 눈의 작은 새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저도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몸짓이다. 초롱초롱 눈망울이 살아난다. 날갯짓도 하지 않고 날아갈 생각도 하지 않는다. 죽지 않고 살아나서 고맙고 반가운 우리 부부의 시선이 작은 새에게서 거두어들여지지 않았다. 젖먹이 아기가 엄마 손을 꼭 쥐고 놓지 않으려는 것같이 가녀린 새의 발도 사람의 손가락을 감아쥐은 발가락에 힘이 실리고 있었다. 새로운 선행을 한 것에는 베푼 자의 기쁜 자기만족이 있다.

김순덕 수필가

이 상황이 다시는 올 수 없는 순간인 것 같아서 사진을 찍자 녀석도 눈을 깜빡이며 포즈를 취해준다 . 혼절해 있던 녀석이 깨어나 새로운 즐거움을 주는 순간이었다. 뜻하지 않게 방문한 손님은 그렇게 이십여분을 머물다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제비 다리를 고쳐준 흥부의 심정이 되어 휘젓는 서운한 이별의 손짓을 뒤로한 채. 자연과 지척에서 사람 이외의 생물과 더불어 살아가는 소소한 일상의 작은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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