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위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으로 해당 기사와 직접적 연관이 없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인간이 살아가면서 과연 마음속에 있는 말을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친구, 부부, 부모자식, 형제, 연인, 직장 상하 등의 사회구조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조건이나 상황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로이 할 수 있느냐 말이다.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특히 갑을관계에서 '을'에 위치한 사람은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면 이런 삶이 '참되다'고 할 수 있을까? 분명 아닌데도 왜 그렇게 살고, 살아야만 하는가? 그렇다면 언필칭 만물의 영장과는 너무 이율배반이지 않는가?

우리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회 사이에 짜인 그물 속에 살고 있다. 마치 가두리에 살고 있는 물고기와 다르지 않다. 마냥 넓은 바다인 줄 알고 자유롭게 사는듯하지만 쉽게 느낄 수 없는 거대한 그물이 자신을 늘 통제하고 있다. 그물이 바로 사회적 사실(social fact)이다. 개인행동이나 사고방식 등을 규정하는,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구속이나 압력이다. 이 사회적 사실의 지배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삶의 부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얘기다. 의식주에서부터 생각과 행동에 이르기까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그 무엇에 조종당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 보이지 않는 무엇은 대부분 타인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물론 부지불식 내가 참여해 만든 것도 있다. 그러나 극히 적다. 그러니까 내가 만든 것이 아닌 그 무엇에 우리는 통제당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통제 속에 내 행동의 동인(動因)은 당연 '나' 가 아닌 '타자(他者)'다. 나 스스로 결정해 행동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이든, 상황이든, 구조이든 각종 사회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뿐이다. 타인 시선과 사회 이목(耳目)이 바로 복합적인 사회 변수다. 삶의 기준이 '나'가 아닌 '타자'라는 점이다. '나'를 버리고 '타자'를 우선 고려해야 한다. 이렇다 보니 본성은 사라지고 허식이 판친다. 행동 곳곳에서 보이지 않는 타자의 압력이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무시할 수 없다. 만사가 그렇다. 타자의 눈치를 봐야 하고 사회구조에 정신과 육체를 맡겨야 한다. 인간은 불행히도 태어나면서부터 시선의 권리와 의무를 '타자'에게 이양해야만 했다. 다른 동물과 달리 불완전하게 태어나 타자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홀로서기가 가능해지고 성숙해 가면서도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대의명분 역시 시선을 타자에게 이양하도록 했다. 아니 나의 시선을 강탈해 갔는지도 모른다. 이는 인간의 소외(疏外)를 불러왔다. 자신으로부터 소외 말이다.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하며 자신의 진정성을 의심하지만 의심의 실마리를 풀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태생적으로 인간에게 씌워진 멍에다. '나'가 '타자'의 시선과 사회의 이목에 억압되어 활력을 잃었다. 피로에 너무 지쳐있다. 현대인은 어깨를 누르고 있는 무게를 지탱하기 어렵다. 지켜야 할 규정이 너무 많고 관계해야 할 상황과 인간들도 무척이나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현대인은 축 늘어진 닭 벼슬과 같다(crestfallen). 의기소침하고 풀이 죽어있다.

분명 육체와 정신의 주체는 '나'다. 나와 관계된 객체는 모두 '손님'이다. 주체인 '나'가 주체 역할을 하지 못해 어느 사이 객체가 됐다. 이른바 주객전도(主客顚倒)다. 그러니까 우리 삶은 '나'가 아닌 '손님'이 주인 역할을 하는 셈이다. 사회는 갈수록 복잡다단해지고 있다. 그물 역시 더욱 촘촘해지고 강렬해지고 있다. '나'를 상실한 인간은 이제 더 이상 나를 찾을 수 없다. 그저 세류에 따라 생각 없이 살기도 한다. 심지어 피로에 지친 인간은 나를 만날 수 있는 터널의 끝을 기대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삶의 반경(半徑)과 삶의 질이 정비례한다고 착각한다. 반경이 긴 만큼 '나'를 상실하고 있음을 간과하고 있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어찌해야 할까? '나'가 중심이 되어 살아보자. 타자의 시선과 강제성 때문에 일찍 감치 숨어버린 심연(深淵)의 '나'를 찾아 진정한 나의 주인이 되도록 하자는 말이다. 방법은 하나, 과감히 타자 추방을 일삼는 일이다. 가방 하나 메고 미지로의 여행을 홀연히 떠나 새로운 사람과 낯선 상황을 만나 보자. 혼자임을 자부할 수 있는 자연인이 되어보기도 하자. 사회관계와 사회구조에서 자주 이탈해 보자. 멍 때리기로 머리를 비워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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