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톡톡톡] 이종팔 서울더불유치과병원장

이종팔 서울더불유치과병원장

[중부매일 정구철 기자]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으매 나의 생애를 인류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이렇게 시작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의학의 윤리를 담은 가장 대표적인 문서다.

고대 그리스시대 히포크라테스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세상의 모든 의사들에게 꼭 지켜야 할 지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의술은 인술이 뒷받침돼야만 비로소 그 가치를 제대로 발할 수 있다.

가끔씩 인술을 무시한 의사들에 대한 뉴스가 우리를 씁쓸하게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주변에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충실히 실천하고 있는 좋은 의사들이 더 많다.

충주에서 '서울더블유치과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종팔 병원장이 바로 그런 의사다. / 편집자

이종팔 병원장은 나이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나이를 생각하고 살지 않아 정확한 나이는 따져봐야 알지만 아마 일흔은 넘었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의 얼굴에는 고희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마치 소년 같은 순수함이 내비쳐진다.

대전 출신인 이 병원장은 어릴 적에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기 위해 농구를 시작했으며 대전중학교 시절 농구선수로 활동했다.

서울에 있는 휘문고등학교를 들어가 농구와 공부를 놓고 고민하다가 조금 더 자신이 있는 공부를 택했다.

이 병원장은 치과의사로서 남들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화려한 경력을 갖고있다.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해군 군의관으로 복무한 뒤 명동에서 치과의원을 개업했다가 1976년 미국으로 건너가 사우스 캘리포니아대학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그곳에서 교수생활을 했다.

그는 군의관으로 복무했던 시절 1년여 간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당시 미군병원에 자주 파견을 가면서 경험한 미국의 선진화된 의료장비와 시설은 그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결국, 결혼 후 편안한 생활을 뒤로 한 채 미국으로 건너가 다시 치과공부를 시작했다.

부인과 1남 1녀의 가족을 둔 가장으로 공부를 병행해야 했던 미국생활은 아주 힘들었다.

그는 당장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치과의사라는 사실을 숨긴 채 기공실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치과의사들이 기공일을 허드렛일 정도로 생각했던 시절이어서 치과의사로서 기공실 아르바이트는 생각조차 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하지만 당시 신분을 숨겨가며 어깨 너머로 배운 기공기술은 지금까지 그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18년 간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국내에 돌아와 서울 삼성의료원 치과 외래교수와 자문의를 역임하는 등 이른바 잘나가는 치과의사로 이름을 날렸다.

서울과 분당을 오가며 바쁘게 생활하던 그가 충주로 내려온데는 가슴아픈 사연이 숨어있다.

그는 아름답고 소중한 순애보를 간직했던 부인과 3년 전에 사별했다.

이 병원장이 군의관 시절, 당시 대학생인 부인을 만났고 한눈에 반해 무려 7년 동안이나 따라다니며 구애작전을 펼친 끝에 결혼에 성공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두 자녀를 낳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면서 살았다.

두 자녀는 모두 치과대학을 졸업했지만 본인들의 뜻에 따라 현재는 다른 일에 종사하고 있다.

하지만 그토록 사랑했던 부인이 갑자기 말기암 진단을 받았고 얼마 되지 않아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눈앞이 막막했고 세상에 혼자 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할 만큼, 철저히 외로움을 느꼈다.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심한 자괴감도 느꼈다.

이런 그를 배려해 미국에 있는 두 자녀가 미국으로 들어올 것을 간절히 요청했지만 가지 않았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힘들 정도로 괴로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이처럼 그가 상심에 빠져있던 시절, 현재 서울더블유치과병원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형석(48) 씨를 만났다.

스스로 환경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하던 터에 김 이사장을 만난 그는 미국으로 가는 대신 선뜻 충주행을 택했다.

영국 회계사 출신으로 국내 굴지의 회계법인에서 인도 내 한국 비즈니스 총괄로 있던 김 이사장은 젊은 능력가였다.

이 병원장은 김 이사장과 힘을 합쳐 2015년 4월 1일 충북도내에서 가장 큰 규모인 '서울더블유치과병원'을 충주에 개원했다.

세대를 훌쩍 뛰어넘은 40대와 70대의 만남이지만 서로 간 이해의 폭이 넓어 두사람 모두 세대차이를 못 느끼고 있다.

이 병원에는 이종팔 병원장과 김 이사장의 부인인 손효정 병원장을 포함, 7명의 의사들이 첨단장비를 갖추고 구강 악 안면외과와 보철, 구강내과, 치주, 교정, 소아, 등 각 파트별로 특화된 진료에 나서고 있다.

특히 병원 내에 기공실까지 갖춰 의치 제작 등을 위한 시간을 크게 절약할 수 있다.

이름이 알려지면서 현재는 충주 뿐 아니라 인근 제천과 단양, 음성, 괴산을 비롯해 강원도 원주와 경북에서까지 많은 외지환자들이 이 병원을 찾는다.

이 병원장과 김 이사장은 우리나라에서 고객 만족도 1위인 병원을 만들어 보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정하고 있다.

의사들에게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수련병원을 만들겠다는 목표도 갖고있다.

이 병원은 분기별로 팀 평가를 통해 우수한 팀에게는 해외연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환자를 대하는 직원들이 만족해야 환자들도 의료서비스에 만족할 수 있다는 이 병원장과 김 이사장의 속 깊은 배려다.

의술에 앞서 인술을 중요시하는 이 병원장의 성품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이 병원은 이 병원장의 주선으로 1년에 한 번씩 그가 군의관으로 근무했던 베트남에서 해외 의료봉사를 실시하고 있다.

한국에서 가져간 물품을 현지인들에게 전달하고 직접 진료봉사에 나서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건국대글로컬캠퍼스에 1천200만 원, 교통대학교에 800만 원의 장학금을 지원하고 올해 중원대학교에 800만 원의 장학금을 지원했으며 충주지역 고등학교에서 선발된 여러 명의 장학생들에게 매월 장학금을 제공하는 등 지속적인 장학사업에도 나서고 있다.

또 충주시자원봉사센터, 충주시주민자치위원장협의회와는 의료기관 지정 협약식을 맺고 지역민들을 위해 다양한 의료혜택을 제공하고있다.

병원 측은 앞으로도 노인과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의료봉사 등 지역사회를 위한 다양한 봉사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이 병원장은 평소 환자나 직원들에게 인자하고 온화한 성품이지만 후배 의사들이 진료를 하면서 작은 실수라도 할 경우에는 불호령을 내린다.

의술이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것이니 만큼, 작은 실수도 용납돼서는 안되고 의사로서 철저한 자기관리가 뒤따라야 한다는 그의 평소 지론 때문이다.

이 병원장은 "환자와 의사의 신뢰관계가 무너지면 진료가 무의미하다"며 "의사는 학벌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무엇보다 양심적인 진료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충주에 사는 3년 동안 정이 들면서 이제는 충주가 제 2의 고향이 됐다.

농구는 물론, 골프와 스키, 승마, 탁구, 볼링까지 만능스포츠맨인 그는 충주에서 일과 취미활동을 병행하면서 어느 때보다 행복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그는 "처음에 충주에 왔을 당시에는 아는 사람도 없고 정말 막막했지만 지금은 그동안 어떻게 서울에서 살아왔는지 모를 정도로 충주가 너무 좋다"고 밝혔다.

사랑했던 부인과 생전의 추억 때문에 아직까지 분당에 살던 집을 정리하지 않고 비워두고 있지만 조만간 분당집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종팔 병원장은 "평생 의사가 천직이라고 생각했고 지금까지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며 "나이가 들어가면서 인술에 대한 중요성을 더욱 실감하고 있고 앞으로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진료에 나설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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