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위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으로 해당 기사와 직접적 연관이 없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내 나이 오십이 넘었는데... 며칠 전 '소년 김경구에게'라는 메일을 하나 받았다. 그 메일을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는지 모른다. 37년 전 알았던 국군 아저씨가 보내준 감격스러운 메일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37년 만에 끊겼던 소식을 받은 셈이다. 메일은 짧지만 여러 색의 느낌이 가득 담겨 있었다. 37년 전, 난 15살로 빡빡머리에 교복을 입은 중학생이었다. 아저씨는 20살 초반의 국군 아저씨였다. 그 당시 학교에서는 1년에 한두 번 국군 아저씨께 위문편지를 쓰라고 했다. 여학생들은 모르겠지만 남학생 대부분은 대충(?) 편지를 썼다. 그런데 난 꼭 한번이라도 국군아저씨께 답장을 받고 싶어 한 자 한 자 정성을 담았다. 그 정성이 통했는지 정말 얼마 후 나와 한 친구한테만 답장이 왔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또래들 보다 생각도 어리고 성장도 조금 느린 편이다. 지금은 배도 나오고 흰머리도 많아 똑 같지만. 그래선지 편지를 쓰고 답장을 엄청 기다렸다. 학교갔다 오면 집배원 아저씨가 우리 집에 왔다 갔나, 자전거 바퀴의 흔적을 찾을 정도였느니.

지금도 편지에 무슨 내용을 썼는지 기억은 하나도 없다. 사진도 보냈는데... 어떤 사진을 보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단, 국군 아저씨로부터 받은 사진 두 장은 지금도 갖고 있다. 이사를 다니면서 편지는 잃어버리고 말았지만 사진을 잘 보관했다. 그게 국군 아저씨에게 할 수 있는 나름의 착한 예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가끔 '장공석' 이란 국군 아저씨의 이름이 독특해 인터넷 주소창에 쳐보곤 했다.

그런데 얼마 전 한 초등학교 동창 카페에서 아저씨의 이름과 같은 분의 사진이 나왔다. 한참을 본 후 아저씨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곳에 내가 갖고 있는 아저씨의 사진을 올리고 연락을 기다렸다.

부족하지만 아저씨께 내가 지은 책을 드리고 싶었다. 그러면 아저씨가 "빡빡머리 녀석이 많이 컸구나," 라며 많이 좋아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잠시나마 아저씨의 푸른 나이 시절을 편안하게 회상도 하고. 지금 삶에 있어서 마치 특별한 선물처럼.

며칠 후 정말 내게 동화 같은 일이 일어났다. 국군 아저씨로부터 메일이 온 것이다. 소년 김경구에게 라고. 난 예순 살이 된 국군 아저씨를 어떻게 불러야 하나 잠시 고민을 하다 그냥 '국군 아저씨께'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전화 통화를 했다.

난 사진 속 스무 살 초반 아저씨의 얼굴을 떠올리며 현재의 목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아마 아저씨도 나랑 똑 같은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 시절로 돌아가 많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많은 위문편지 중 나한테 보낸 것이 유일한 답장이었다고 한다. 3~4년 전 아내와 함께 사진첩을 정리 하다가 내 사진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고. 난 아저씨와 함께 오래 전으로 추억여행을 떠나는 것이 정말 벅차올랐다. 살면서 이런 느낌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내가 지은 책을 당분간 아저씨께 보낼 수가 없게 되었다.

김경구 아동문학가

'책 선물은 사양하고자 합니다. 서점에 들러 가슴 벅차야 할 그 순간을 그대에게 빼앗기기 싫어서입니다.'라는 메일 내용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저씨의 말씀처럼 37년 전 편지 한 장으로 이어진 만남이 친구처럼, 형 아우처럼 이어져 오래 오래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난 전화통화에 선생님이라고 아저씨는 경구 씨라고 불렀지만... 여전히 내 가슴에는 장공석 국군 아저씨로 남아있다. "장공석 국군 아저씨, 정말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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