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선 수필가

지천명을 넘어 중반에 들어선 지금 병원을 자주 찾는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원래 오십대 들어서면 보수 공사비가 많이 든다고. 무슨 말인가 했더니 여기 저기 고장이 나서 그걸 고치기 위해서는 비용이 많이 든단다. 하기야 집도 오랜 되면 수리를 하고 리모델링을 하지 않는가.

어느 날 갑자기 허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침에 뜨끔했는데 뭐 이거는 구부리고 머리도 못 감을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얼른 한의원에 가서 진맥을 집고 침을 맞았다. 며칠을 맞고 나니 좀 괜찮아져서 내버려 두었다. 그런데 웬걸, 이제부터는 왼쪽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 발바닥까지 아파오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왼쪽 다리 전체가 통증 덩어리가 되었다. 허리만 아플 때는 그런 대로 견디었는데 다리까지 통증이 내려가니 참 막막했다.

이제까지는 한의원에 갔으니 지금부터는 양의원에 가보자 마음먹고 동네 통증의학과를 방문했다. 아플 때 병원을 선택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정형외과를 가야할지, 통증의학과를 가야할지 헷갈린다. 어떤 사람은 어디가 유명하니 거기를 가보라고 하지만, 난 그냥 집에서 가까운 곳을 간다. 걸어가면서 몸을 돌아보고 그나마 자기 성찰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허리 협착증이라고 했다. 몇 년 된 것이 이제야 증상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뚱뚱하고 몸집이 큰 사람이라면 벌써 왔을 텐데, 그나마 몸이 가볍고 크지 않아 이제야 온 것이라고 했다. 어쨌든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염증 주사와 물리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호전이 되지 않았다. 여전히 아프고 걷는데도 불편했다. 이를 어찌해야 하나. 불만을 토로하니 의사는 꾸준한 물리치료를 권장하며, 정 안 되면 큰 병원 가서 정밀 진단을 받아보라고 한다. 난감하다. 이럴 땐 의학 전문 지식이 있으면 좋으련만. 사람들에게 물어 보기도 하고 네이버를 검색해 보기도 한다. 순간 명의를 찾아 헤매는 방랑자가 된다.

병원을 바꾸어 보기로 했다. 세포증식 주사를 전문으로 놓는 신경외과가 있기에 가 보았다. 아침 일찍 접수를 하고 두 시간 넘게 기다렸는데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궁금하여 물었더니, 지금 받고 있는 사람들은 어제 밤 자정 넘어 미리 접수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나는 혀를 내둘렀다. 세상에 이럴 수가! 이렇게 아픈 사람이 많고, 주사 한 번 맞기 위해 이렇게 기다린다는 말인가. 할 수 없이 오전 치료를 포기하고 오후에 다시 와서 주사를 맞아야 했다.

몇 번을 맞고 나서 지금은 매우 좋아졌다. 병원도 나에게 맞는 곳이 있었다. 그러니까 나에게 맞는 의사를 만나야 하고, 또 맞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 세상 이치가 매 한가지인 것 같다. 인연이 되어야 무엇이든 되는 법이다. 부모와 자식이 그러하고 스승과 제자가 그렇다. 서로가 잘 만나면 빛나는 관계가 된다. 거기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다.

허리와 왼쪽 다리만 아파서 병원에 갔다면 보수 공사를 운운하지 않겠다. 다리 치료 중에 갑자기 잇몸이 부어올랐다. 괜찮겠지 하면서 하루 이틀을 지냈는데, 붓기가 빠지지 않아 할 수 없이 치과에 갔다. 정말이지 치과는 거의 십 년 만에 간 것 같다. 치아가 좋은 거는 아니지만, 사십 대 중반에 대공사를 한 이후 거의 간 기억이 없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잇몸이 문제가 아니고 왼쪽 아랫니에 사랑니가 누워서 나 있고, 그 주위에 보기에도 희한한 커다란 물혹(낭종)이 보였다. 사진을 찍어보니 베일에 가려 있던 치아의 전모가 드러났다. 아뿔싸, 이런 일이! 아니, 이 나이에 사랑을 한다면 얼마나 할 것이고, 왜 하필이면 그 놈이 누워서 있고, 또 물혹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물혹을 그냥 두면 뼈까지 손상이 갈 수 있고, 혹시 나쁜 것은 아닌지 조직 검사를 해 보라고 했다. 이 쯤 되니 두려워졌다.

얼른 치대병원에 예약을 했고 한참을 기다려 입원을 했다. 살다보니 참 별 일이 다 있다. 낭종은 무증상이다. 그러니 이런 것이 잇몸 속에 숨어 있을 줄이야. 천만 다행이다. 낭종과 사랑니는 잘 제거되었다. 조직 검사 결과도 단순한 물혹으로 밝혀졌다.

최시선 수필가

난 이것 말고 몇 년 전에 입원을 한 적이 있다. 초음파 검사를 할 때마다 담낭에 용종이 있다고 했다. 이것이 점검 커져 의학적으로 용인할 수 없는 크기로 발전했다. 의사는 무조건 담낭절제술을 하라고 명령하듯이 말했다. 할 수 없이 나흘 간 대학병원에 입원을 했고, 지금은 쓸개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 때도 아무런 증상이 없었다.

보수 공사! 꼭 증상이 있어야 보수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보다. 비가 샐 것 같으면 지붕에 얼른 이엉을 엮어 주어야 한다. 몸도 그런 것 같다. 몸은 영혼을 감싸 안은 집이니 미리 알아 고쳐주면 더 좋지 않겠는가. 최근 형님마저 일찍 가시니 괜히 겁이 난다. 생에 대한 집착은 아닐진대 그래도 인생은 아직 살만하지 않은가.



약력

▶월간 문예사조 수필 등단
▶CJB 청주방송 제5회 TV백일장 수필 장원
▶한국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청주문인협회 부회장
▶저서 '청소년을 위한 명상 이야기', '학교로 간 붓다', '소똥 줍는 아이들', 수필집 '삶을 일깨우는 풍경소리'
▶진천 광혜원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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