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톡톡톡] '솔티맥주만드는 농부' 홍성태 뱅크크릭 브루잉 대표

뱅크크릭 브루잉 로고 / 뱅크크릭 브루잉 제공

[중부매일 이보환 기자] 직업을 고를 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인생 2모작 시대, 가슴에 더욱 와닿는 이야기다.

즐길 수 있어 쉽게 지치지않고, 소득도 창출 할 수 있어 경제적으로 쪼들리지 않는다.

대학 때 전공을 살려 정보통신 분야에서 활약하던 정보기술(IT) 전문가가 맥주공장을 차렸다.

제천시 봉양읍 세거리로 솔티마을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맥주를 만들며 살기좋은 동네를 설계하는 홍성태(51)씨를 만났다.


홍성태씨는...

뱅크크릭 브루잉 홍성태 대표 / 뱅크크릭 브루잉 제공

그의 명함을 보니 대한칵테일조주협회 수제분과 위원장, 뱅크크릭 브루잉(주) 대표로 표기됐다.

홍 대표는 이름도 생소한 '뱅크크릭 브루잉'이라는 회사 이름에 대해 'Bankcreek Brewing'으로 제천양조장이란 뜻이라고 알려줬다.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IT 분야 베테랑이다.

우리나라 이동통신 시장이 열릴 때 한 회사의 공동설립자로 활약하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가 불어닥치자 회사를 그만두고 외국으로 떠났다.

같이 근무하던 동료, 후배들의 구조조정 업무를 맡느니 차라리 자신이 나가자는 생각이었다.

미국, 중동, 유럽, 동남아 등 세계를 돌면서 15년 정도 생활했다.

홍씨는 인공위성에서부터 테러 방지 서비스까지 다양한 업무를 맡아서 처리했다.

그의 업무능력을 높이 평가한 세계유수의 회사들이 앞다퉈 스카우트했다.

하지만 급변하는 업계의 특성상 은퇴를 생각할 수 밖에 없었고 늙어서도 잘 할 수 있는 분야로 맥주제조를 꼽았다.

자신이 맥주를 좋아하는 데다 단순 노동으로 퇴직 이후를 보내는 선배들을 반면교사로 삼았다.

진로를 정한 뒤 세계의 다양한 맥주를 섭렵했다.

일본, 미국 슬로베니아, 벨기에 등을 오가며 숱한 고생을 했다.

양조 기술을 배우기위해 농가의 헛간에서 잠을 자는 일도 다반사였다.

3년여 노력끝에 나름대로 맥주 제조법을 터득한 뒤 2년전 산좋고 물맑은 제천시 봉양읍 솔티마을로 들어왔다.

솔티맥주

뱅크크릭 브루잉은 솔티마을의 이름을 따서 제품의 이름을 솔티맥주라 지었다. / 뱅크크릭 브루잉 제공


홍 대표가 자리잡은 솔티마을은 마을 진출입로가 하나밖에 없는 전형적 골짜기 동네다.

그가 이곳에 둥지를 튼 것은 맥주의 가장 중요한 성분인 최고의 물과 홉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하 250미터에서 끌어올린 암반수는 술맛의 원천이다.

자체 생산한 홉을 원료로 사용한 맥주의 풍미도 일품이다.

솔티 맥주는 호가든과 비슷한 과일향이 나는 에일(ALE) 맥주이다.

그는 벨기에 맥주 제조 장인이 만드는 전통 주조 방식 그대로 재현했다.

맥주보리와 효모도 벨기에 것을 쓰고 있다.

보리를 빻고 끓여 추출한 엿기름에 홉과 부재료를 넣어 끓인 후 발효 탱크에서 1주, 숙성 2주의 과정이 끝나면 보통 판매용 병맥주가 나온다.

솔티 맥주는 병 상태에서 상온 숙성과 저온 숙성의 추가 3주 과정을 더해 완성된다.

제품은 모두 4종류다.

'솔티 브라운'은 7.5도로 초콜릿과 커피 향을 느낄 수 있으며 샴페인이나 사케 병 형태에 담았다.

'솔티 블론드'는 6.5로 오렌지 과일향을 느낄 수 있다.

'솔티 봄'은 5도로 솔티 맥주 중 알코올 함유량이 가장 낮으며 부드럽다.

'솔티 애비'는 8.5도로 국산 다른 맥주 중 알코올 도수가 가장 높다.


솔티마을의 미래

마을에서 어르신들의 자식 구실까지 하고 있다는 홍대표의 바램은 마을 주민들과 함께 솔티마을을 전국 최대의 홉 재배단지로 만드는 것이다. / 뱅크크릭 브루잉 제공

홍 대표는 솔티마을에 내려온 뒤 '한국 맥주'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수제 맥주 대부분 수입 홉을 사용한다는 것을 생각해 우리 땅과 기후에 맞는 홉을 재배하기로 맘 먹었다.

직접 홉을 재배하고 말려 사용할 경우 신선하고 풍미도 강한 한국 맥주가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홉 씨앗이나 묘목을 구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1989년 농산물 수입 개방으로 외국에서 싼 홉이 수입되면서 국내 홉 재배 농가는 거의 사라졌다.

미국을 비롯한 홉 재배 국가들은 자국 농산물 보호라는 이유로 홉 씨앗이나 묘목의 해외 방출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꾸준함과 근면함 때문에 홉 400그루를 영국의 한 농장에서 들여와 심고 수확하는 데 성공했다.

홉 재배를 꾸준하게 늘려 솔티 맥주에 들어가는 홉을 전량 자체 생산하고, 최종적으로 솔티마을을 전국 최대의 홉 재배단지로 만들 계획까지 세웠다.

/뱅크크릭 브루잉 제공

마을 주민들도 작목반을 만들었고, 맥주 만들기 체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홍 대표는 홉을 경제 작물로 보고 시장의 확장성에도 주목한다.

당뇨병에 효과가 있는 기능성 건강식품과 화장품 원료로 이미 사용중이기 때문이다.

한번 심으면 30년 이상 수확 가능하고 농약을 사용하지않는 것도 장점이다.

영농주기도 땅에서 홉 줄기가 올라오는 3월부터 수확기인 8∼9월까지로 짧다.

덩쿨식물인 홉을 기계로 자른 뒤 꽃만 사람이 분리수확해 노동력도 크게 필요하지않다.

홉이 올라오는 지주도 한번 설치하면 10년 가량 유지돼 여성화, 고령화가 심각한 농촌의 대체작물로 손색이 없다.

홍 대표는 "어르신들에게는 고추농사보다 낫다고 말씀드린다"며 "홉 원료를 외국에서 들여오기가 쉽지않아 경쟁력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과잉생산에 따른 부작용은 어쩔 수 없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마을출신인 홍석용 제천시의원은 솔티맥주 홍보부터 홉 재배면적 확대에 누구보다 열심이다.

홍 시의원은 "홍 대표는 경로당이나 논밭에서 연세많은 어르신들의 자식 구실까지 하고 있다"면서 "전국 여느 농촌처럼 침체됐던 솔티마을은 이제 홉농사와 수제 맥주로 유명세를 타고, 활기가 넘쳐 흐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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