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야기] 한범덕 미래과학연구원 고문

위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으로 해당 기사와 직접적 연관이 없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저는 동양사학과를 나왔습니다.

원래 역사에 관심이 많아 그리 되었습니다만 중간에 공무원으로 진로를 바꾸는 바람에 더 깊은 공부는 하지 못했지요. 그러나 입학당시에는 학자로서의 꿈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자고 다짐하며 수업도 성실하게 듣고, 따로 한문강독도 받고, 세미나도 참석하는 등 야무지게 뛰어다녔습니다.

당시 저의 학교는 과사무실 가득 원전(原典), 동양사학과니까 당연히 중국사서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한문책이지요. 거의 번역이 안 된 책이었습니다. 선배들에게 물어봤자 한계가 있었고, 혼자 수학 인수분해 하듯 이리저리 조합을 해가며 나름대로 해석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보통 힘이 드는 게 아니었지요.

대부분 그 책들은 일본사람들이 경성제국 대학시절 공부하다 남겨준 책이라 그 사람들이 읽는 방법을 표시한 것도 있었고, 또 일본어로 번역된 책도 많이 있어 한문과 더불어 일본어를 배워야 했습니다. 허나 당시의 시대상황은 반일 감정이 극심하여 우리 학교에서는 공식적으로 일본어 강좌를 갖지 못했답니다. 별 수 있습니까 종로로 나가 일본어학원에서 따로 배워야 했습니다.

요즘 일본어배우기는 참 좋은 것 같습니다. 그 때는 나이든 분들은 아시겠습니다만 박성원이라는 분이 쓴 일본어책이 유일했던 기억이 납니다. 순 문어체라 구어는 못하고 책만 간신히 읽을 수 있는 정도였던 것이었지요. 그 바람에 일본사람을 만나도 말 한마디 못하는 처지라 일본여행도 잘 못합니다.

어쨌든 그런 식으로 노자도덕경(이건 그때 법제처 공무원이 번역한 것이 있었습니다.), 순자, 한비자 등을 더듬거리며 읽었던 추억(?)이 있습니다. 참, 당시 이상은 선생님의 '한한대사전'은 참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너무 낡아 헤져버렸는데도 그냥 버리질 못하고 아직도 가보(?)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22일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인공지능 기반 고전문헌 자동번역시스템 구축사업 착수보고회가 열렸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한국정보화진흥원에서 2017년도 ICT기반 공공서비스 촉진사업으로 이 고전번역사업을 선정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개발하는 인공지능은 '신경망 기계번역(NMT)'으로 최근 구글과 네이버가 도입한 기술이라고 합니다. 단어나 구문이 아닌 문장을 자연스럽게 통째로 번역한다는 것이지요.

첫 번째로 번역하는 것은 '승정원일기'라고 합니다. 인조1년(1623년)부터 융희4년(1910년)까지 기록한 3천243권, 2억4천250만 자의 책이니까 대단히 방대한 분량입니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 1994년부터 번역을 했는데도 지금까지 20%정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번역방법은 영조 때 기록 30만개 정도의 문장을 인공지능에게 학습을 시킨 뒤 아직 번역하지 못한 부분을 번역하는 방식이라는데요. 이렇게 할 경우 45년으로 예상했던 번역작업기간이 18년으로 단축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합니다. 더 당겨질지도 모르지요.

한범덕 미래과학연구원 고문

아무튼 이제 옛날 사전 찾아보며 이리저리 해석하며 읽어야 했던 고전도 인공지능으로 순식간에 해석이 되는 시대가 눈앞에 와 있습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백과사전이 아무 쓸모가 없어진 시대에 공부도 이젠 새로운 시대로 들어가버려 옛날 대학시절의 끙끙대던 모습이 새삼 떠올라 적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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