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걸재 '공주소리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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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역사에는 부끄럽고 아픈 몇가지 사건들이 있다. 조선조 당파 싸움이나 강한 나라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대주의, 그리고 수없이 반복된 외적의 침입과 그에 따른 전쟁등이다. 그 중에서도 '강한 자에게 굴욕적으로 의지하는 사대주의'는 오천년 한민족의 역사에 있어서 떼어 낼 수 없는 숙명과 같은 것이었다.

이에대해 생존의 한 방법이니 용인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비굴함의 역사'로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맹목적인 사대주의에 대한 경계는 당연한 결과다. 이러한 관점에서 요즘 청소년 문화를 살펴보면 참으로 어이없는 현상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물론 청소년기의 치기어린 행동을 걱정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게임과 채팅에 빠져드는 청소년들의 행동 따위는 지나치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이는 나이가 먹고 가치관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치유되는 것들이며 어느 시대나 청소년들의 치기어린 행동들을 우려하는 기성세대들의 목소리가 있었다. 그러나 사대적 사고를 키우는 현상은 지극히 경계해야 할 일이다. 이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영어에 대한 맹신이다. 과거 우리나라 국가 지도자들이 '세계화'를 부르짖었다.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면에서 세계화를 이루지 못하면 나라가 망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더구나 일부에서 영어를 공통언어로 사용하자는 망발을 서슴없이 떠들고 있다. 하지만 열병처럼 번지는 영어 조기 교육은 참으로 허망한 교육의 사치다. 국민 90% 이상은 평생 한번도 영문 편지를 쓰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무역업이나 여행사 현지 가이드가 아니라면 영어를 생활 용어로 살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문화 중 대표적인 것들은 영어 때문에 파생되는 기형의 것들이 많다.

장년층의 귀로는 알아듣기 힘든 힙합이나 랩 등은 우리말이 분명한 노랫말을 영어의 화법으로 노래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청소년들도 처음에는 알아듣지 못하다가, 이를 알지 못하면 유행에서 뒤떨어지는 것 같아 반복적으로 훈련하게 되었고 이제는 그런 노래가 아니면 관심을 두지 않게 된것이다. 청소년들이 영어를 많이 사용하는 것이 유식한 행동인 것처럼 생각하는데도 그것을 지적하는 사람이 없고 심지어 가정에서 영어로 생활하는 것이 부모로써 자랑거리가 되어있는 한심한 모습이 우리의 현실이다.

의식주의 서구화 보다 무서운 것이 문화적인 사대주의다. 더구나 청소년들은 이러한 맹목적인 추종이 '사대주의'의 위험이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고 단순한 유행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더구나 부모들이 부추기고 있어 더 두렵다.

이걸재 공주소리꾼, 소설가

말과 문화에 관한한 우리는 필리핀의 사례를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196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가 부러워하던 필리핀이 미국만큼 잘살아 보자고 언어를 영어로 바꾸고 나서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 이제는 부자는 고사하고 먹고 살기 힘들어 한국으로 딸을 시집 보내는 나라가 되어있지 않은가. 밥을 굶는 것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정신문화와 언어를 잃으면 비루하다 못해 비참해진다. 청소년들이 영어를 추종하는 현재의 모습은, 역사 속에서 중국이나 일본에게 나라를 팔아먹은 사대주의 매국노들을 닮아가는 첫발이었다고 분명하게 경종을 울려 주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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