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미영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

위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으로 해당 기사와 직접적 연관이 없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우연한 기회에 병원을 찾았다. 진료실에 비치된 공짜 커피 한 잔을 들고 잡지를 대충 보고 있는데, 병원이 갑자기 굉장히 소란스러워졌다. 살펴보니, 할머니 한 분이 온 힘을 다해 '아파, 아파~'라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고 계셨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잡지에 무심한 시선을 두고 있는데, 할머니께서 어찌나 절절한 목소리로 '아파, 나 죽어, 아파~'라는 말을 반복해서 외치시는지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고 할머니를 쳐다보게 되었다.

할머니는 휠체어에 앉아 두 눈마저 꼭 감고 '아파'라는 말을 마치 주문처럼 외고 있었는데, 그 옆에는 간병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께서 '어제는 이거보다 훨씬 심했어요. 오늘은 엑스레이 촬영을 한 번에 성공해야 할 텐데'라고 아들에게 할머니의 상태를 설명함과 동시에 자신의 노고에 관해서 호소하는 듯했고, 할머니의 아들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는 휠체어에서 약간 물러나 난감한 표정으로 간병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서있었다. 할머니와 일면식도 없었던 나조차 '아파, 아파'를 외치는 할머니를 보면서 마음이 크게 흔들리는데, 아들의 마음이야 오죽하겠는가 싶어 차마 그 아들의 얼굴을 더 보지는 못하고, 눈은 잡지에 두고 귀로만 '아파, 아프지 않게'라는 할머니의 절절한 외침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뒤에 '아파, 하지마!'라는 비슷한 내용의 고성이 들려왔는데, 같은 내용인데 너무나 다른 느낌이 들어 궁금한 마음에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쳐다보았다. 병원 한 켠에서 어린 아이가 채혈을 하고 있었는데, 아이는 좀 전의 할머니와 마찬가지로 두 눈을 꼭 감고 '아파, 아프지 않게, 싫어'라는 소리를 목청껏 내지르고 있었는데, 아까와 극명히 다른 느낌을 주는 이유는 바로 '아파'라는 외침에 대한 주변의 반응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할머니가 있는 힘껏 '아파, 아프지 않게'라는 소리를 지를 때 간병인과 아들 사이의 조용조용한 대화와는 달리, 이번에는 주변의 모든 어른들이 어쩌면 아이보다 더 큰 목소리로 아이의 '아파' 소리가 땅에 미처 닿기도 전에 아이에게 '괜찮아, 금방 끝나'라는 말을 시작으로 '아픈 것 아니야', '끝나고 나면 사탕 사줄게', '이제 다했다. 정말 씩씩하네'라는 칭찬의 말까지 아이의 두려움에 끊임없이 반응했다.

할머니와 아이가 소리치는 '아파, 하지마'라는 말의 뜻, 그 말 끝에서 전해지는 할머니와 아이가 느끼는 두려움의 정도, 진료에 소요된 시간, 심지어 소리의 데시벨까지, 거의 모든 것이 비슷했는데, 할머니의 '아파, 하지마'라는 외침이 어쩐지 더 간절히 느껴진 이유는 주변의 반응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필자는 갑자기 할머니에게 다가가서 '할머니 괜찮아요. 곧 끝나요. 엑스레이는 아픈 것이 아니에요'라고 말해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미영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

어린 아이와 연로한 부모님의 보호자 역할이 공존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는 필자는 문득 '일이 많이 힘들지는 않니'라는 부모님의 걱정에 할머니의 아들처럼 멀뚱히 반응한 것은 아닌지 새삼 반성하게 되었다. 오늘 단 하루만이라도 '점심 밥은 맛있게 먹었느냐'는 부모님의 물음에 '무슨 반찬으로, 누구와 함께, 무슨 이야기를 나누며' 먹었는지 어린 아들에게 응답하는 태도로 대답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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