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톡톡톡] 충북 산장문화 말해주는 '속리산 비로산장'

속리산 비로산장 전경

[중부매일 송창희 기자] 생기 가득한 청년의 얼굴로 가을의 결실을 향해 달려가는 속리산의 여름 숲을 가슴으로 느끼며 도착한 비로산장은 평화로웠다. 고요했다. 하늘을 향해 시원하게 뻗은 나무들,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줄 것만 같은 둥글고 큰 바위들, 그리고 시원한 폭포수. 비로산장에서 만나는 청정한 자연, 그 자체가 자연치유의 충만한 기운을 전해주었다. / 편집자

# 지금도 회자되는 '무한 보시' 이야기

비로산장은 속리산 세심정에서 경업대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다. 면사무소 공무원을 지낸 고 김태환 옹은 속리산 기념품 가게를 하다가 1965년 숯 움막을 개조해 비로산장을 열었다. 이후 1970년 속리산이 우리나라 6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1974년 현재의 모습으로 건물을 증축해 충북의 대표 민간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서예에 능했던 김태환 옹은 평생 새벽 2시 일어나서 글씨를 쓰고 해가 뜨면 책을 읽었다고 한다. 법주사 대웅보전 주련 글씨 서각 등 수많은 사찰의 주련과 현판을 서각할 정도로 불교계에서는 유명한 서예가였다. 비로산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새해 덕담이나 가훈을 선물해 지금도 대를 이어 그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다.

그런 할아버지 옆을 그림자처럼 지켰던 부인 이상금 여사는 '자비보살', '해탈보살'이라고 불릴만큼 자비로운 미소와 음식솜씨를 지녀 한번은 강원도 오세암 암자에서 주지스님이 경내 스님들을 데리고 '미소견학'을 오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김태환 옹 부부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리워 하고 칭송을 받는 것은 세상을 비관하는 사람들과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하룻밤을 따뜻하게 묵고 갈 수 있는 방을 내어주고, 때론 몇날 며칠 밤 새워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이 다시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한 '무한 보시' 때문이다.

# 속리산의 자연속에서 그저 쉬어가는 곳

2010년 어머니에 이어 2013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자식들은 번갈아 비로산장을 지키며 봉사와 베품의 삶을 사신 부모님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

"아버지는 한결 같으셨고, 남의 기쁜 소식을 내 일처럼 기뻐하셨죠. 그리고 어머니는 참 자태가 고우셨어요. 솜씨가 좋으셨던 어머니가 내놓는 정갈한 자연밥상을 한번 맛본 분들은 지금까지도 그리워 하시죠."

막내딸 김은숙 씨와 형제자매들이 이 곳을 지키는 것은 그렇게 비로산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때문이기도 하다.

언니 도손 씨는 "1980년 보은 수해 때 미국, 캐나다, 중국, 일본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걸려오는 안부전화에 부모님의 공덕을 새삼 느꼈다"며 "'큰 산처럼 덕을 쌓으면 덕이 큰 물처럼 흘러간다'는 부모님의 말씀과 행동을 본받아 여기 오시는 분들이 그저 편하게 있다 가도록 돕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는 비로산장 6개의 방에 머물 수 있으며, 식사는 제공하지 않고 있다. 이 곳이 마음을 비우고 몸을 비우는 곳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음식이나 원푸드로 머물다 가기를 권한다. 그리고 앞마당에는 이 곳을 지나는 등산객들이 잠시 쉬며 언제나 먹을 수 있는 커피와 차를 준비해 놓고 있다. 한 때는 정성껏 다린 약초 물을 비치해 놓기도 했는데 그것을 꺼려하는 등산객들이 있어 지금은 아예 보편적인 커피와 차로 바꿨다.

비로산장이 소개된 세계 관광가이드북

# 외국인들도 "한국의 파라다이스" 찬사

비로산장은 2년마다 재발행 되는 세계적인 관광가이드북인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에 빠지지 않고 소개되면서 외국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실제 비로산장의 방명록에는 미국, 독일, 네덜란드 등 외국인들의 기록이 많이 남아있다. 이들은 이 곳을 "자연 그 자체", "너무나 한국적인 파라다이스", "누구나 마음은 통하는 곳"이라는 찬사를 쏟아내고 있다.

이 곳에서 한국식 미역국 생일상을 받은 네덜란드인, 4년 전 혼자 왔다가 남자 친구가 생기자 함께 다시 방문한 벨기에인 등 외국인들의 입소문이 퍼져 종종 다국적 학회가 열리기도 한다.


# "지켜져야 합니다" 국내외서 응원 쇄도

"정기적으로 찾아 주시는 분들과 직접 오지 못해도 이 곳이 지켜져야 한다는 바람과 응원들 때문에 오늘의 비로산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희들도 힘들지만 이렇게 지키고 있구요. 힘이 들땐 '바라는 마음없이 보시하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다시 생각합니다."

비로산장을 지키는 김은숙 씨 등 자손들은 이 곳이 나그네와 주인이 함께 공유하고 자식과 그 자식을 이어주는 곳이길 기원하고 있다.

"잡다한 마음들을 흐르는 계곡물에 씻어냈습니다. 긍정적 마음, 웃는 얼굴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겠습니다", "나는 오늘 이곳에서 37년 전의 서툰 새댁과 큰 꿈을 가진 청년과 걸음마를 시작한 딸을 만나고, 부모님의 뜻을 이어 산장을 지켜내는 아름다운 자매들을 만났습니다", "대학생 때 내가 이 방에서, 그 다음 방문 때는 저 방에서 잤어요", "We loved our stay here. Beautiful location, Paradise!. The best the people. Thanks for all the help and care", "타임머신이 있다면 40여 년전 그날 그 기억, 그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으련만. 정갈한 시간, 고운 할머님, 아름다운 이 곳! 언제까지나 이대로 변치 않기를 기도합니다", "나그네를 모시는 일에 온 삶을 바쳐온 어머님 아버님 그리고 가족들, 사람의 역사와 사람다움의 기록입니다", "이솔아, 할아버지는 1976년 12월 26일에 이 곳에 왔었단다. 너의 아빠가 뱃속에 있을 때도 온 이 곳을 너와 함께 찾아오니 감회가 깊구나…"

대를 이어 비로산장을 지키고 있는 자손들은 이런 이야기 꽃이 계속되길 기도한다. 그리고 이 곳에 와서 만큼이라도 세상 복잡한 것들을 내려놓고 자신을 들여다 보길 권한다.

그리고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매일 아침 기도를 한다. "이 터에 온 모든 사람들이 잘 살기를, 그리고 무탈하기를. 또 누구나를 잘 대하고 내 자식같은 마음으로 품기를. 사례없이 베풀기를…"

한 여름에 만난 비로산장의 이야기는 '두루 빛을 비추는 존재'라는 이름처럼, 그렇게 옛 추억과 현재의 추억이 동그라미를 그리며 계속되고 있었다.

유범 충북대 영문과 교수

<비로산장의 40년 손님> 유범 충북대 영문과 교수

깊은 산속 정취와 대를 이은 인간적 교류
그 어디에서도 줄 수 없는 "찬란한 시간"


속리산 산속에 자리잡고 있는 비로산장은 내가 대학생이었던 70년대 중반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40여 년 동안 꾸준히 찾고 있는 정겨운 곳이다. 나에게 비로산장에서의 휴식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깊은 산속의 정취를 여유있고 편안하게 누릴 수 있는 휴식은 일상생활의 번뇌를 모두 잊게 하고 낙원에 와 있는 듯한 행복함을 준다. 이것은 비로산장이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 대피소가 아닌 민간소유의 숙박시설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대피소는 산행을 하는 도중에 여러 사람들이 한 방에서 단체로 잠을 자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지만, 비로산장은 오래된 건물이긴 하지만 여러 개의 방을 갖춘 숙박시설과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혼자든 여럿이든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또 대를 이은 주인장과의 인간적인 교류도 정겨움과 편안함을 준다. 1965년에 비로산장을 건립해서 2000년대 후반까지 주인장으로 계셨던 고 김태환 옹 부부는 산장에 묵는 사람들과 정이 오가는 인간적인 교류를 가졌었다.

높은 경지에 이른 서예가였던 김태환 옹은 즉석에서 글을 써서 선물로 주시곤 했는데, 이를 받은 사람들은 글씨를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 놓은 사진을 답례로 보내기도 했다. 부인 이상금 여사께서는 사람들을 다정하게 대하셔서 인기가 많았는데 특히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온정을 베풀었다. 재정적으로 어려워진 고시생에게 여러 달 동안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기도 했고, 이혼하려는 부부를 대화를 통해 마음을 바꾸게 하기도 했다.

나도 90년대 후반에 김태환 옹에게서 '백번을 참으면 만인이 화목하다'는 뜻을 가진 '百忍萬和'라는 글을 받아서 지금도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이렇게 산장의 주인과 손님 간에 정이 오가는 인간적인 교류는 김태환 옹 부부가 작고하시고 자손들이 산장을 운영하게 된 후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젊은 시절 혼자 왔던 사람들은 결혼 후 가족과 함께 오고, 부모와 함께 왔던 아이들은 성인이 된 후에 와서 새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옛 추억을 회상한다.

이러한 매력 때문에 나는 쫓기는 일상에서 여유가 생길 때면 비로산장으로 향한다. 비로산장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그 곳에서 누릴 행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마음이 설레고, 산장에 머무는 동안은 자연의 정취에 흠뻑 젖어 행복을 느낀다. 돌아오는 길은 행복했던 여운으로 몸과 마음이 가볍다. 비로산장에서의 휴식은 그 어디에서도 줄 수 없는 찬란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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