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진단] 한인섭 부국장겸 정치행정부장

청주공항 인근 MRO사업부지. 2016.08.29 / 뉴시스

정부가 분위기를 한껏 띄워 달려 들었던 지자체가 낭패를 당한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최근에만해도 지자체 경쟁 방식의 공모 사업을 벌여 놓은 정부가 슬며시 발을 뺀 일이 종종 있었다.

전국 지자체들이 올인했던 국립철도박물관 사업은 대표적인 경우다. 충북도는 2016년 제천시의 반발을 무릅쓰고 청주 오송을 유치 후보지로 정했다. 신청도 하기 전에 지역내부에서 신경전이 벌어져 탈락한 제천에는 소외감과 박탈감을 안겼다.

충북도를 비롯한 지자체들은 서명운동도 모자라 대규모 유치 결의 대회도 개최했다. 과열경쟁과 예산문제가 겹치자 국토부는 지난해 7월 공모를 접었다. 영남권 신공항, 국립한국문학관 사업 역시 오락가락하던 정부는 공모를 접었다. 지역간 갈등과 국정 불신은 컸다. 그러나 중앙부처와 하루이틀 '거래'할 처지가 아닌 지자체는 울분을 삭힐 뿐 '볼멘소리' 한번 제대로 내지 못했다.

청주공항 항공정비사업(MRO)은 이런류의 공모사업과도 성격이 달랐다. 국토부가 재정이 열악한 충북도의 등을 떠밀어 시작한 사업이다. 2009년 12월 국토부가 청주공항을 MRO 시범단지로 단독 지정했던 것은 충북을 고무시키기 충분했다. 충북도는 이를 근거로 2010년 1월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항공정비사업 추진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같은해 2월 충북에 사업지원을 약속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던 충북도는 단지를 조성해 한국항공우주산업이 사업을 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했다. KAI는 용지와 별개로 사업이 자리잡기까지 6천억원 안팎의 투자금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정부에 많은 것을 요구했다. 정부는 지원에 한계가 있다며 사업 사이즈를 줄여 시작하자 제안했으나, 결국 불발돼 KAI는 경남을 택했다. 뒤를 이어 2015년 1월 참여했던 아시아나 역시 지난해 12월 손을 떼 MRO는 조종(弔鐘)을 울렸다.

따지고 보면 MRO는 애초부터 정부가 해외 의존하는 항공정비분야 사업을 내수로 전환하려 '깃발'을 올렸던 사업이다. 그래서 지자체나 KAI와 같은 항공정비업체, 항공사 모두 판을 벌이면 정부가 '보따리'를 풀어 놓으려니 생각했던 사업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랬던 정부가 MRO 입지를 공개경쟁체제로 전환한 것은 '정책 혼선'으로 표현하기는 부족한 무책임한 태도였다. KAI와 손을 잡은 경상남도와 사천시 역시 돌파구를 찾았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한인섭 부국장겸 정치행정부장

문제는 항공정비사업(MRO)을 위한 단지를 조성하다 중단한 에어로폴리스 1지구를 어떻게 할 것이냐다. 청주시 내수읍 입동·신안리 일원 13만5천540㎥(4만1천평) 규모 에어로폴리스 1지구에 투입된 조성비와 땅값은 194억원에 달한다. 2013년 시작된 단지조성 사업은 의회의 질타와 비난을 무릅쓰고 어렵사리 승인을 받았던 것이다. 충북도는 결국 '특별조사위원회'를 꾸렸던 충북도의회의 '치도곤(治盜棍)'을 면하기 어려웠다.

이런 사정이 아니더라도 국토부를 향해 에어로폴리스 1지구 용지를 매입해 달라는 충북도의 요구는 명분이 없는 게 아니다. 항공수요가 날로 늘어나는 청주공항 시설 확장을 하려면 장기적으로 에어로폴리스 1지구와 같은 용지는 얼마든 활용 가능할 게다.

충북도는 최근 2018년 예산에 부지매입비 204억원을 편성해 달라고 국토부에 요구했다. 문재인 정부 1기 내각 출범과 함께 진용을 새로 꾸린 국토부가 얼마나 유연성을 발휘할지 지켜볼 일이다. 청주공항 MRO사업은 MB정부가 충북에 가한 '상처'를 보듬는 일이기도 하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