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청주시문화재단 컨텐츠진흥팀장

청주출신 재미 설치미술가 강익중씨/ 중부매일 DB

번잡하다. 세상도, 가정과 직장의 일도 번잡하고 내 머릿속도 잡다한 것들로 가득하다. 삶이란 언제나 의외의 일들로 가득하다. 때로는 그릇된 욕망이 내 가슴을 찌르며 닦달한다. 무엇을 더 바라는 것일까. 게으름 피우던 장맛비가 줄기차게 오고, 도시는 오랜만에 촉촉하게 젖었다. 하천마다 흙탕물 가득하니 이왕이면 낡은 생각과 버려야 할 것들을 저 강물에 띄어 보내고 싶다.

빗속의 풍경은 사람의 마음까지 젖게 한다. 모든 사물에는 존재의 운명이 깃들어 있다는데 빗속에 서면 새로운 시선으로 사물을 볼 수 있어 좋다. 사사로운 것에도 슬픔이 밀려오고, 늘 보던 풍경인데도 새 살 돋는 희망을 발견한다. 엊그제였다. 설치미술가 강익중 선생과 함께 비를 맞으며 담배공장을 한 바퀴 돌았다. 거칠고 야성적인 공간, 낮고 느린 그곳은 비에 젖어 더욱 운치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침묵과 비움과의 가치를 배웠고, 진한 땀방울과 삶의 향기를 보았으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엄연해졌다.

생얼미인. 강 선생의 입술을 비집고 나온 첫 말은 생얼미인이었다. 담배공장은 화장을 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 속엔 수많은 시간의 풍상과 삶의 흔적이 담겨 있다. 오래된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 공간이 사라지면 역사도 사라지고 사랑도 사라진다. 하여 담배공장이 낡았다고 함부로 침 뱉지 말라. 그 속에 수많은 보석이 있으니 그것들을 하나씩 캐내면 된다.

무엇을 채울 것인가 고민하지 말라. 왜 담배공장을 주목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본질의 문제부터 접근하자. 외벽에 덧칠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지키자. 본질에 대한 접근을 했다면 청주시민이 알고 있는 것, 청주시민이 하고 싶은 것부터 하나씩 만들어 보자. 많은 도시가 세계 최대, 세계 최고를 꿈꾸며 본질 밖에서 방법을 찾고 있다. 어리석은 짓이다. 아름다움은 본질에 충실할 때 그 빛을 발산한다.

경제논리로, 기업의 잣대로 담배공장을 개발하려 하지 말자. 당장의 이익에 눈멀어 그 가치를 훼손한다면 지금이야 돈이 되고 행복할 수 있어도 영혼이 피폐할 것이며, 깊은 상처와 아픔으로 되돌아 올 것이다. 세계의 주요도시는 공간의 가치를 살리되 문화예술로 디자인하고, 시민의 힘으로 가꾸었으며, 그 성과를 시민 모두가 향유하지 않던가.

그러하니 세계 어디어서도 하지 않은 일, 청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 청주사람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바로 교육이다. 아이 낳아 키우고 싶은 도시를 만들면 세상 사람들은 자연스레 청주에 귀를 기울일 것이며, 발걸음을 재촉할 것이다. 어른들의 최대 관심사는 자식문제다. 자식이 잘 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본능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등으로 결혼도 늦추고, 아이 낳는 것도 미룬다. 등 떠밀려 아이를 낳는 불행한 시대에 살고 있다.

청주는 직지에서부터 태교신기, 명심보감, 세종대왕 초청행궁, 두꺼비, 가로수길, 생명농업에 바이오까지 생명과 교육의 가치를 꽃피어오지 않았던가. 담배공장 일원을 도시 속의 도시로 가꾸자.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이곳에서 마음껏 희망하고, 마음껏 꿈을 빚도록 하자. 춤추고 노래하며, 만들고 깎고 빚으며 다듬는…. 어린이가 시장이 되고 어린이가 의원이 되며 어린이가 아티스트인 아주 특별한 어린이공화국을 만들자.

변광섭 청주시문화재단 컨텐츠진흥팀장

담배공장 옥상은 또 하나의 세상, 상당산성과 우암산의 푸른 기상을 이곳으로 옮겨놓자. 파도처럼 출렁이고 숲속처럼 아늑함으로 가득한 곳, 그곳에서 힐링과 창조의 가치를 만들면 좋겠다. 직지와 세종대왕 행궁은 과거의 것이다. 과거가 과거에 머무를 때 희망은 단절된다. 담배공장은 현재의 것이다. 담배공장이 공간 그 자체에 머무를 때 고립되고 무의미해질 수 있다. 교육은 미래의 문제, 생명의 문제, 가치의 문제다. 청주가 알고 있는 것, 잘할 수 있는 것, 반드시 해야 할 것에 귀를 기울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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