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순덕 수필가

이상국 시인 / 뉴시스

점심때 콩국수 먹으러 오라는 지인의 문자를 받았다. 번개 모임이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려서인지 입맛 없는 날 시원한 콩국수는 단백질 보충도 할 수 있고 여름날 먹기에 딱 좋은 음식이다. 콩국수의 콩은 빠르게 삶아 내지 않으면 비린내가 나거나 메주 냄새가 나기 때문에 삶는 것도 은근히 까다롭다. 그래서인지 좋아는 하지만 즐겨 먹지는 못하였다. 겉절이 김치를 가운데 두고 한상 가득 모인 반가운 얼굴들과의 담소가 콩 국물 속에 구수하게 녹아내린다.

불현듯 어느 자리에선가 시 낭송가가 들려주었던 이상국 시인의 '국수가 먹고 싶다'라는 시가 생각났다. 뒷모습이 허전한 우리들의 모습 속에서도 위안처럼 들려오던 국수가 먹고 싶다는 외침. 가슴 먹먹하게 메아리치듯 울렸던 시를 검색했다. 시인의 표현대로 지금 세상은 큰 잔칫집 같은 형국으로 돌아가고 있지만 풍요의 실상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는 현실.

어느 시대, 어떤 상황에서도 삶이 눈물 나게 아픈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다. 시인이 그것을 깊이 이해하고 그들에 대한 연민과 공감으로 쓴 '국수가 먹고 싶다'를 낭독해 주었다. 시를 통해 자신의 삶을 새롭게 돌아보는 지인들의 대화가 다시 이어졌다. 긴 모양으로 인하여 장수를 상징하는 국수를 생일에 먹지 못하면 뭔가 마무리를 덜한 느낌이 든다는 누군가의 말에 공감의 박수도 터져 나왔다.국수와 시를 만난 즐겁고 감사한 한 끼 식사.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 병 가득 담긴 고소하고 진한 콩 국물이 손끝에서 춤을 추었다.

한 끼 식사의 정 나눔은 며칠 전에 다녀온 강원도 낙산사에서 먹었던 무료 국수 공양에도 생각이 머물렀다. 2005년 강풍을 타고 번진 산불로 낙산사는 큰 피해를 입었다. 그때 보내준 국민들과 불자들의 도움에 보은 하기 위해 시작되었다는 무료 국수 공양.

낙산사를 한 바퀴 돌고 출출하던 차에 우연히 발견한 공양실은 고속도로에서 상한 기분까지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평창 동계올림픽 준비로 도로를 정비하는 영동고속도로는 곳곳에서 정체를 일으키고 있었다. 국도로 달렸어도 벌써 도착했을 시간의 정체를 하다 보니 은근히 짜증이 많이 났었다. 올해 12월까지 도로 정비가 꾸준히 이어진다고 하니 참고하여야겠다.

공양실 입구에는 중국어. 일어. 영어로 친절하게 적어놓은 노란 안내판이 서 있었다. 외국인에 대한 배려가 당연하지만 따뜻하게 느껴졌다. 기웃거리며 들어선 공양실에는 봉사자 분들이 정성스럽게 삶아놓은 국수가 하얀 웃음으로 반긴다. 육수가 부어지고 다진 김치와 간장을 얹은 국수를 받고 보니 그동안 준비하고 마음 써준 봉사자들의 수고스러움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방문하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한정된 시간에 먹는다 하여도 많은 국수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도 십여 년이 넘도록 꾸준히 행하여진다는 것은 또 다른 감동이었다. 어려울 때 받은 보은으로 인해 시작된 나눔이 무료 국수 공양이라는 사랑으로 이어진 것이다.

김순덕 수필가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보호하는 약으로 알아 깨달음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낙산사의 무료 국수 공양실 안에 비치된 글귀이다. 국수를 먹기 전에는 눈으로 읽던 글귀가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니 가슴으로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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