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 속의 민주주의는 한 그루의 버드나무를 키우고 있
 었다. 어쩌다가 나는 자라오던 고향 마을을 떠나 딴 마을에서 새마을 지도자가
 되게 되었고 더 나가서 읍연합회장이란 자리까지 가게 되었다.
 회장이 되어 첫 번째 회의를 주도했을 때는 모내기철이 막 시작될 무렵이었는데
 협의회 사상 유례없는 ''선진지 견학''이란 것이 확정되었다. 이때 난색하는 이가
 읍장이었다. ''소위 지도자란 사람들이 농번기에 놀이를 가다니, 그걸 통과시켰단
 말이오''
 사실상 새마을 지도자 연합회는 민간단체협의회여서 행정기관의 지시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한가지 고개를 조아려야 했던 것은 새마을 사업자금
 을 따내야 하는데 그 열쇠를 행정기관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회원들은 회원
 들대로, 읍장은 읍장대로 나를 압박했다. 그 때 나는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지만
 다수의 결정에 따를 것이라고 했다. 행정수장의 비협조 속에 선진지 견학은 이
 루어졌다. 떠나는 날 아침, 각급 기관대표 그리고 읍장도 나와 금일봉을 전달했
 지만 그때에 내게 두 가지의 딱지가 붙었다. 강한 사람, 또 하나는 쉽게 부러질
 재목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사는 마을에서도 힘겨운 일이 생겼다. 취락구조 개선사업으로 마을 모두가
 빗더미 위에 있으니 지도자는 살길을 찾아내라는 것이었다. 다행이 도청 농정국
 과 협의 끝에 육성우자금을 지원 받을 수 있었다. 자금을 배정하는 과정에도 애
 를 먹었다. 내 처지도 마을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 마리의 소자금
 도 차지하지 못했다. 서로 더 가지려는 아귀다툼 때문이다. 그러나 어려우면 어
 려운 대로 살아가기 마련이었고, 그 후 이년이 지나 소를 출하해야 할 때에 소
 값이 폭락하는 것이었다. 송아지를 사서 큰 소가 되었는데 송아지값 밖에 안가
 는 것이다. 이 때에도 나는 애매한 소리에 시달렸다. 지도자는 이런 일을 미리
 알고 혼자서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들고 하늘만 바라볼 뿐 할 말이
 없었고 민주의 나라는 언제난 바람이 불고 내 마음 속의 버드나무는 휘고 휘었
 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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