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비정규직 없는 충북 만들기 운동본부는 24일 도청 서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도로 보수작업을 하다 숨진 도로보수원의 순직 인정을 촉구했다. 2017.7.24. / 뉴시스

정부는 어제 충북 청주와 괴산, 충남 천안 등 3개 시·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이들 3개 시·군은 기상청 예보의 최고 10배에 달하는 폭우가 쏟아지면서 사상 유례없는 피해를 당한 곳이다. 일부 주민들은 순식간에 삶의 터전인 집과 논밭이 유실되면서 이재민 신세가 됐으며 도로와 제방등 공공시설물도 큰 타격을 받았다. 이번 수해에선 무엇보다 도로가 끊기고 파손되면서 복구 작업에 투입됐던 충북도 도로관리사업소 소속 도로관리원이 과로로 숨지는 안타까운 일도 발생했다. 특히 비정규직 공무원인 박모(50)씨 사연은 우리사회 비정규직의 구조적 모순을 새삼 부각시켰다. 17년째 무기계약직 도로보수원으로 일했던 박모 씨는 시간당 90㎜의 폭우가 쏟아진 지난 16일 이른 아침에 출근해 수해로 막혔던 도로가 빠른 시간 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장대비가 퍼붓는 가운데 점심도 거른 채 웬 종일 도로복구에 매달렸다. 그는 몸이 녹초가 될 만큼 일하다가 오후 8시 20분쯤 작업 차량 안에서 잠시 쉬다가 그대로 숨졌다. 박모씨는 공무중에 숨졌지만 무기계약직이라는 이유로 순직에서 제외됐다.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때문이다. 엄연한 공무원이지만 살아서 '공무원연금법' 등의 적용을 받지 못한 이들은 죽어서도 차별대우를 받은 것이다. 이런 차별 속에서 비정규직 공무원들이 몸과 마음을 바쳐 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리 만무하다.

무엇보다 비정규직의 순직 인정도 애매하다. 그동안 비정규직의 순직이 인정된 것은 세월호 참사 때 학생들을 구하려다 숨진 김초원·이지혜등 기간제 교사 2명이 유일하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 당시 담임교사로서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4층 선실로 내려갔다가 희생 됐다. 하지만 이들 교사들은 공무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3년 3개월 동안 순직으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문재인 대통령이 이들에 대한 순직 인정 절차를 진행하라고 지시함에 따라 관련 법률의 순직 대상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가 포함돼 최근 순직으로 인정받았다.

국가 업무를 수행하다 변을 당했지만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은 누가 봐도 부당하다. 김초원·이지혜 교사는 기간제 이전에 교사라는 직업적 소명의식과 사명감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생사의 기로에 처한 학생들을 돕기 위해 나섰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비정규직 도로보수원들의 마음속에 공무원으로서 책임감이 자리 잡지 않았다면 무려 12시간이상 도로복구에 매달리지 않았을 것이다. 똑같은 일을 하다가 소중한 목숨을 잃고도 비정규직이라고 차별받고, 대통령의 관심을 받지 못해 외면 받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마침 국가인권위원회 이성호 위원장이 지난 20일 순직이 경제적 보상 이상의 존엄한 명예를 갖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사망자가 공무원인지 아닌지보다) 공무를 수행하다가 목숨을 잃었는지 아닌지를 중심으로 순직을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힌 것은 올바른 지적이다. 마찬가지로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공무원으로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하다가 숨졌다면 '업무상 재해 중 사망'이 아닌 '순직'으로 예우하는 것이 헌법정신과 평등권에 부합한다는 것을 새삼 일깨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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