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민정 수필가

관련 사진 / 중부매일 DB

7월이 시작되자 올 여름 휴가계획을 세웠다. 일찍이 펜션 예약을 해야 마음에 드는 곳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에 서둘러 아들에게 예약을 부탁했다. 벌써부터 휴양지 풍경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도심을 떠나 휴대폰, 인터넷 등 익숙한 현대문명의 이기에서 벗어나 맑고 깨끗한 계곡물과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며 야생화도 들어다보고, 읽고 싶은 책도 마음껏 보리라. 그러다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지친 마음에도 새 힘이 돋을 테지. . .삼굿 같은 날씨가 연일 이어져도 한 달 후면 시원한 계곡에서 망중한에 빠져 있을 것을 상상하면 저절로 즐거워졌다.

몇 달 동안 가뭄으로 농민들의 애를 태우더니 전날 밤 유례없는 폭우 재난문자가 한 시간에 한 번꼴로 딩동 거렸다. 설친 잠을 깨고 TV을 켜자 긴박한 상황이 생생하게 보도 되고 있었다. 창밖으로 장대비가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며 금방 사단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시간이 갈수록 시내 도로 곳곳이 침수되어 교통이 마비되고 1층 상가와 주택에 물이 잠기기 시작하더니 6차선 대 도로변에 물이 허리까지 차기 시작했다. 통제소에서는 오전 내내 홍수경보를 내렸다. 무심천이 범람하여 이대로 한 시간만 더 비가 내리면 시내 전체가 위태롭다는 보도는 긴장감을 더욱 압박했다. 옹벽붕괴로 학교 급식실이 반파되었다는 보도가 났다.

번뜩, 그 학교 가까이 비만 오면 누수로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오래된 건물이 염려되었다. 달려가 보니 역시나 였다. 물 폭탄은 건물 옥상에도 떨어졌다. 배수구가 꽉 막혀 무릎까지 물이 차 있었다. 부랴부랴 응급조치를 하고 주택을 둘러보니 3층 복도를 타고 벽면으로 물 자국으로 빠르게 스며들고 있었다. 다행히도 방안은 아직 괜찮았다. 집으로 돌아오니 비가 소강상태로 잦아들긴 했지만 저지대 상가 중에는 거의 물에 잠겼고, 복대동 롯데마트 앞 사거리는 물바다 속에서 수십 대 차량들이 지붕만 보인채 떠다니고 있었다.

이날 청주는 22년만의 최대 홍수를 기록했다. 정전과 단수도 곳곳에서 벌여졌다. 하루 종일 청주는 도심 기능이 거의 마비됐다. 오후를 기해 충북의 호우특보는 해제됐지만, 수마(水魔)가 할퀴고 지나간 곳곳이 아수라장이 되고야 말았다.조금 숨을 돌리고 나니 지인들이 걱정되었다. 근교에서 창고업을 하고 있는 문우님께 연락을 하니 그곳에도 창고마다 물이 차서 소방차로 뿜어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게다가 수년 동안 정성 들인 씨 간장항아리와 된장 항아리가 빗물에 둥둥 떠다녀 못 먹게 되었다한다. 그래도 자신들은 다른 사람에 비하면 피해가 적은 편이라며 천만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김민정 수필가

다음 날 한 달 전 예약한 팬션 주인에게 연락이 왔다. 이번 폭우로 화장실과 팬션 일부가 붕괴되어 계약을 취소해야 되겠다고 했다. 그 다음 날은 올 봄에 장 담그기 체험에 참가했던 체험장에서 고추장, 된장 항아리에 빗물이 들어가 아쉽게도 폐기해야 한다고 했다. 물 건너간 휴가와 기대했던 장맛 앞에 망연자실 했다. 폭우의 상흔은 누구도 비켜가지 못한 것 같다. 이번 폭우로 현장을 목격하면서 사람도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른다. 질병이든, 실패든, 위기의 폭탄을 맞는 순간 빠져나갈 배수구가 없으면 몸과 마음도 붕괴하고야 만다. 살 다보면 피할 길 없는 사건 사고가 때때로 폭탄을 몰고 와도 마음의 분출구를 만들어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알맞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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