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법무부교정자문위원

위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으로 해당 기사와 직접적 연관이 없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얼마전 우연히 결혼정보업체의 직업별 점수표를 보게 되었다. '사'자 직업이 상위에 랭크되어 있었고, 그 '사'자들 사이에도 일정한 규칙에 따라 점수가 차별적으로 배분되어 있었다. 그 배점 규칙은 그 '사'자들의 일반적인 생애소득이 주된 변별요소가 되었다고 한다. 점수표상에 직업을 지칭하는 접미어로 '사', '원', '공' 등이 있었다. 예를 들면 항공업계와 관계된 직업에는 조종사, 승무원, 수리공 등이 있고, 위에 언급된 순서대로 결혼점수가 배점된다. 대략 그들의 전통적인 급여 서열과 조직상 지위는 아마도 사→원→공의 순서였을 것이 능히 짐작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신의 자녀들이 금전적으로 풍요롭고, 남들보다 높은 지위를 얻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그러므로 가급적 나의 자녀가 사, 원, 공의 직업중 '사'자 직업을 갖기를 원한다. 오랜 사농공상 유교적 계급질서에 익숙한 연배 지긋한 어르신들일수록 그들의 자녀가 과거 지배층을 의미했던 '사'자 직업을 갖기를 바라는 것도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필자는 부와 명예를 거머쥔 전문 목수도 보았고, 금전적으로 절박해진 의사, 변호사도 많이 보았으니 위 점수는 평균적인 가정일 뿐이다. 육체 노동의 가치가 높게 평가되는 구미선진국의 경우에는 오히려 우리가 생각하는 '공'의 평균수입이 더 높은 경우가 많고, 행복의 질이 높다고 하니 우리나라의 인식이 서구처럼 바뀌면 위 우리나라 전통적인(?) 결혼정보 배점 방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수정될 것으로 생각된다.

예상대로 변호사도 '사'자 직업인 까닭에 배점표 상위에 랭크되어 있다. 많은 이들의 생각에는 모두들 먹고 살기 팍팍한 '헬조선'에서 그나마 변호사가 먹고 살만한 직종이라 여겨지고 있는가 보다. 간혹 메스컴을 달구는 법조 스캔들에 나오는 몇몇 전관변호사의 억소리 나는 수입과 호화스런 생활이 변호사들의 평균을 한껏 올려놓은 탓인 것을 아는 일반인들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직업명칭에 붙은 접미사에 비추어 보면 '사'자 직업은 주로 국가가 부여하는 일정한 자격을 취득한 자들의 직업을 지칭하는데, 국가가 일정 기능을 부여한 시험을 통과하여야 하므로 일반적으로 공인된 자격이 없는 직업에 비해 평균적으로 수입이 좋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는 하다.

많은 분들이 무심코 지나치는데, '사'자 직업에도 각각 다른 '사'자를 쓴다. 판ㆍ검사의 '사'자는 事(일 사)이고, 의사의 '사'자는 師(스승 사)인 반면, 변호사의 '사'자는 士(선비 사)이다. 각 '사'자에 다른 '사'자를 쓰는 것은 언어학적으로 복잡 미묘한 이유가 있다고 하나, 변호사 선배님들이 후배들에게 말씀하시기에 판ㆍ검사는 나랏일을 죽어라 해서 일을 의미하는 일 "事"자를 쓰고, 의사는 환자를 긍휼히 여기며 봉사하는 자세로 스승처럼 일하라는 의미에서 스승 "師"자를 쓰고, 변호사는 대쪽같은 선비처럼 살으라는 의미에서 선비 "士"자를 쓴다고 한다.

선비는 볼 때 분명하기를 생각하고, 들을 때는 확실하기를 생각하며, 낯빛은 온화하기를 생각하고, 태도는 공손하기를 생각하며, 말은 충실하기를 생각하고, 섬기는 일은 공경한가를 생각하며, 의심나면 물어보기를 생각하고, 분이 날 때는 재난을 생각하며, 이득을 보면 의로운가를 생각하여야 한다고 한다.이렇게 선비의 덕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변호사는 필히 면기난부(免飢難富, 기근은 면할 수 있으나, 부자가 되기 어렵다)한 삶을 살 수밖에 없고, 이를 변호사의 명예로 여겨야 한다고 배운다. 의사들도 선서를 통해 인류를 위해 희생하는 삶에 대하여 약속한다고 한다. 사회에 봉사하라는 의미에서 다른 '사'자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을 터이다.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법무부교정자문위원

'사'자들의 일탈과 관련한 각종 메스컴의 보도나, 그리고 오로지 돈과 연관되어 '사'자가 상위에 랭크된 결혼 점수표를 보면 변호사는 많으나, 선비(士)의 삶을 지키는 변호사는 적고, 의사는 많으나, 스승(師)의 삶을 사는 의사는 적은 것 같다. 거짓말이라도 결혼 점수표의 배점기준이 그 직업이 세상에 주는 이로움이 기준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누군가 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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