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영화 '군함도' 첫날 97만 관객 신기록 '스크린 독점' 논란도 / 뉴시스

할리우드는 흔히 '꿈의 공장'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상상하거나 또는 상상밖의 모든 이야기들이 스크린을 통해 구현된다. 그래서 할리우드 영화는 '팝송'과 함께 미국문화의 첨병이자 상징이다. 할리우드영화에 심취하다보면 미국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진다.

6.25전쟁이후 오육십년대 절망의 시대에 젊은이들은 할리우드영화에 탐닉했다. 비루한 현실에 대한 반작용이다. 안정효의 소설 '할리우드키드의 생애'에서 모든 면에서 차원이 다른 할리우드영화는 깊은 절망에 빠진 젊은이들에게 고단한 삶과 누추함을 잊게 해주는 진통제였다.

청주출신 감독 정지영은 이 소설을 영화로 옮겼으나 흥행에는 실패했다. 할리우드영화에 빠져 운명이 바뀐 소년을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든 정지영은 아니러니하게 할리우드 영화가 국내 영화시장을 주도하는것에 대해 온몸으로 저항한 감독이다.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은 할리우드 직배사인 UIP가 국내직배를 처음 시작한 해였다. 그 해 첫 직배영화인 '위험한 정사'가 상영되자 한국영화업계가 붕괴된다고 우려한 충무로 영화인들은 극장에 뱀을 풀고 최류탄 분말을 영화관에 집어던지며 완강히 반발했다. 특히 정지영 감독은 그해 10월 '위험한 정사'를 상영하던 신촌 신영극장에 10여마리의 뱀을 풀도록 후배감독에게 지시해 사회적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후 한미FTA 체결을 앞둔 2006년 7월 '자국영화 의무상영제도'로 불리는 스크린쿼터가 축소되자 스크린쿼터사수 영화인대책위는 "스크린쿼터가 없어지면 수많은 영화인들이 일터를 잃게돼 할리우드 영화가 우리생활을 지배할것"이라며 불안감을 드러냈다.

당시 영화인들은 엄청난 자본력으로 국내 영화시장을 장악한 할리우드와 자본의 논리에 편승한 국내 영화관을 싸잡이 비난했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하지만 기우였다. 그후 10년이 지난 지금 한국 영화는 적어도 국내시장에서 할리우드 영화에 밀리지 않는다. 한국영화는 2011년이후 6년간 절반이 넘는 시장점유율로 우위를 점했다.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사례다. 이제 한국영화의 위상도 달라졌다. 2014년 관객수 1761만명을 기록한 김한민 감독의 '명량'을 비롯 천만영화가 14편에 달한다. SF어드밴처 영화인 봉준호감독의 '옥자'는 넷플릭스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전 세계 동시에 공개되는등 올 칸 영화제 최대 화제작이었다. 아이디어와 재기가 넘치는 재능있는 감독들이 할리우드 영화와 경쟁하면서 국내영화시장을 질적, 양적으로 성장시켰다. 이젠 스크린쿼터보다 스크린 독점이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최근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유승완 감독의 신작 '군함도'가 대표적인 사례다. 군함도 제작비의 상당부분을 투자한 CJ E&M 계열의 CJ CGV를 비롯 롯데시네마, 메가박스등 국내스크린의 92%를 장악하고 있는 메이저 3사가 밀어주고 있다. 스크린점유율이 무려 63%를 상회한다. 국내 대작영화가 스크린에 걸리면 작품성이 검증된 할리우드 영화와 해외 예술영화는 상영관을 잡기 어렵다. 관객들은 선택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요즘 청소년들이 할리우드 감독과 배우를 얼마나 알까. '할리우드 키드'란 말도 이젠 소설이나 영화속에서나 존재하는 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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