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청주시문화재단 콘텐츠진흥팀장

포옹, 눈물, 그리고 아쉬움. 짧은 세 개의 단어로 이 모든 것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이산가족 상봉도 아니고 올림픽 금메달 소식도 아니며 드라마의 한 장면을 이야기 하려는 게 아니다. 이보다 더 값진 결실을 맺고 있는 동아시아문화도시 청소년 문화교류의 깊은 감동과 진한 사랑 이야기다.

30명의 아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3박4일. 서로를 이해하고 우정과 사랑을 꽃피우기에는 너무 짧다. 그래서 더욱 긴박했고 간절했으며 열정으로 무장했던가. 처음에는 어색했고 긴장감이 돌았다.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손을 잡아야 할지 망설였다. 청주팀이 먼저 무대 인사를 했다. 극단 꼭두광대의 사전 지도를 받은 탈춤을 통해 일본에서 온 청소년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일본 청소년들은 낯선 땅, 낯선 언어, 낯선 문화 앞에서 잔뜩 긴장했다. 뭐라고 인사를 해야 할지 망설임과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그렇지만 K-POP이 흘러나오자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흥얼거리기 시작했고 어깨춤을 추었다. 그리고 서로의 얼굴을 보며 맑은 미소를 보냈다. 긴장감 흐르던 무대가 어느새 흥겨움의 장으로, 이야기의 꽃밭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반갑다, 친구야. 약속이라도 한 듯이 서로 손을 내밀었다.

한국과 일본의 청소년 4명씩 한 팀이 되는 조 편성이 끝났다. 조별로 닉네임과 슬로건과 상징이미지를 만들었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어떤가. 손과 발로, 눈과 귀와 표정으로, 이마저도 안되면 핸드폰까지 동원해 주어진 미션을 완수했다. 이들이 함께 할 보금자리는 초정약수에 있는 호텔이다. 세종대왕이 이곳에서 행궁을 짓고 한글창제를 완성하고 조선의 르네상스를 실천한 곳이 아니던가. 그래서인지 아이들의 행동은 날렵했고 총명했으며, 기성 세대와 달리 의외의 것들로 가득 찼으며 신선했다.

고인쇄박물관에서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 직지의 창조정신을 배웠다. 청주향교에서는 예절과 다례체험을 했으며 성안길에서는 전통과 현대의 도시 골목길 탐방과 문화쇼핑을 함께 했다. 좌구산에서는 천문대에 올라가 별들의 세상을 탐구하기도 했다. 여행의 백미는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일본의 청소년들은 낯선 풍경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했고, 청주의 청소년들은 늘 우리 문화의 가치를 다시 보고 그 중요함을 각인하는 시간이었다.

어디 이 뿐이던가. 한글과 일본어를 활용한 손글씨 쓰기, 젓가락을 활용한 공연과 장단체험, 탈춤 만들기, 댄스와 레크리에이션, 육즙 쏟아지는 삼겹살과 고소한 통닭파티도 했다.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먹고 만들고 두드리며 춤추고 노래하는 동안 아이들의 삶은 더욱 익어갔으며 풍경은 짙고 여백은 깊어졌다.

3일간의 일정이 끝나고 마지막 밤이 오자 약속이라도 한 듯 마당으로 모였다. 이들에게는 잠자는 시간도 사치라며 어깨동무를 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헤어지는 것이 너무 아쉽다며 포옹하고 눈물을 훔쳤다. 일본 청소년들이 인천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차 안에서도 울고 차창 밖에서도 울었다. 짧았지만 행복했다, 우리 서로 연락하자, 다시 만나자…. 버스 꽁무니가 시야에서 멀어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변광섭 청주시문화재단 콘텐츠진흥팀장

벌써 3년째다. 청주에서, 니가타에서, 그리고 칭다오에서 이같은 청소년교류사업을 전개해 오고 있다. 교류의 시간은 짧지만 감동은 오래가고 사연은 다양하며 그 가치는 아름답다. 헤어진 뒤에도 메일을 주고받고 교감하고 있다. 개중에는 서로의 집으로 초대를 하며 우정을 나누기도 한다. 아래위집으로 마실가는 것이 아니라 이웃나라로 마실가며 저마다의 꿈을 빚는 것이다.

하여, 아이들은 언제나 아름답고 눈부셨다. 그 속마음은 순하고 여리며 따뜻했다. 본질에 충실할수록 심쿵거리는 법이다. 그 만큼 때가 묻지 않았고 존재의 이유가 있는 것이며 사랑하고 사랑받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그리움이 쌓이면 다시 만나리라.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으니 간절하면 다시 만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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