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세이] 최시선 수필가

'일송정 푸른 솔에'로 시작하는 가곡 선구자는 원래 제목이'용정의 노래'였다고 한다. 학창시절부터 불렀고, 요즘은 가사가 하도 좋아 늘 흥얼거리는 노래 중 하나다.

뜨거운 여름, 선구자의 본향인 용정 땅을 밟았다. 늘 마음속에 품어왔던 곳을 이제야 밟아보니 무어라 말할 수가 없다. 소원을 성취한 듯 뿌듯한 마음이 그냥 솟구쳐 올랐다고나 할까. 아무리 듣고 방송에서 보았더라도 발품을 팔아 온몸으로 느끼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다.

광활한 만주벌판! 우리 조상들은 새로운 터전을 위해 정든 고향을 등지고 황량하기 이를 데 없는 곳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나라가 기울고 기근이 닥치니 도저히 살 수 없었던 사람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이 벌판으로 향했던 것이다. 연변의 한 박물관에서 이주역사를 한 눈에 보니 그 역정에 가슴이 먹먹했다. 얼마나 힘들고 고달팠겠는가. 쌩쌩 부는 바람에 몰아치는 눈을 마주하며 걷고 또 걸었으리라.

용정 땅을 밟은 것은 문인협회 교류 차원이었지만, 나에게는 좀 의미가 달랐다. 2세 교육을 하는 사람으로서 민족교육의 발원지인 용정은 왠지 성지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독립운동가 이상설 선생이 최초의 민족 학교인'서전서숙'을 바로 이 곳 용정에 세웠다. 이듬해 네덜란드 헤이그 밀사로 파견되는 바람에 얼마 가지는 못했지만, 만주벌판에 새로운 민족교육의 씨앗을 뿌린 셈이다.

또 한 분! 나는 이 분을 용정에서 맞닥뜨린 것에 대하여 한없는 고마움을 느낀다. 영화'동주'를 보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렸던가. 나는 감동을 하면 어김없이 뜨거운 진액이 흐른다. 무슨 남자가 그러냐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이 모습이 그냥 나다. 별의 시인 윤동주, 그의 서시! 이 시를 읊조리지 않고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 있을까. 한참 시를 쓰겠다고 끄적거릴 즈음,"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로 시작하는 이 서시에 나는 그만 놀라버렸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도 감동이거니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는 것이 더욱 가슴을 저미었다. 얼마나 양심적이고 순수한 마음이기에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웠는가.

윤동주가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생가를 가 보았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지 큰 도로에서 입구까지 도로를 포장하느라 먼지가 풀풀 날렸다. 민가는 없고 푸른 초원에 야트막한 야산이 보일 듯 말 듯 하다. 말로만 듣던 명동촌이다. 윤동주 일가는 간도로 이주해서 터전을 일구었는데 여기가 바로 그곳이다. 얼마나 추웠는지 방 안에 불 때는 아궁이와 솥이 걸려 있었다. 아마도 북방이라 남쪽 지방처럼 바깥에서 불을 지피다가는 추워서 어리대지도 못했을 것 같다. 님은 가고 없지만, 여기저기 시인의 시가 돌에 새겨져 있어 구절구절 꽃이 피고 노래가 들리는 듯하다.

내친 김에 윤동주 시인이 묻혔다는 무덤으로 향했다. 큰길가에서 택시를 타고 조그만 민가를 지나 옥수수 푸른 산길을 달렸다. 순간 영화 '동주'가 생각났다. 영화에서 동주는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자신의 죽음을 예고한다. 알 수 없는 주사를 맞으며 소리 없이 죽어가는 자신을 본 것이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던 1945년 2월 16일, 무슨 뜻인지도 모를 외마디를 외치며 생을 마감한다. 1917년에 태어났으니 그의 나이 향년 29세였다.

윤동주의 무덤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다. 봉분에 심은 잔디가 그냥 흘러내려 벌건 흙무덤이 되어 있었다. 이럴 수가! 상석은 있으나 그리 크지 않고 비석엔 그나마 시인의 궤적을 상세히 적어놓았다. 나는 서시의 구절을 읊조리며 한 잔 술을 붓고는 큰 절을 올렸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하늘을 부끄러워하고, 잎새에 이는 바람에 괴로워하고, 별을 헤며 북간도의 어머니를 그리워한 시인 윤동주! 아주 짧게 살다가 갔지만 그 누가 윤동주의 혼이 사라졌다고 할 것인가.

뜻깊은 용문교를 지나 비암산 일송정에 올랐다. 탁 트인 용정 시내가 한 눈에 보인다. 한줄기 해란강이 유유히 흐른다. 아, 여기가 그 일송정! 정자가 있고 그 옆에 소나무가 한 그루 심어져 있다. 사실 이것은 새로 심은 것이고, 저만치 큰 돌비석이 있는데 그곳이 진짜 일송정이었다고 한다. 지난 날 강가에서 말 달리며 활을 쏘던 독립투사가 그려진다. 망국의 한을 품고 여기 용정까지 올 때야 그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진짜 사나이들이었다.

선구자! 시대를 앞선 사람이다. 앞장서서 민족혼을 일깨운 사람이다. 이상설 선생과 윤동주 시인이 그런 분이다. 공교롭게도 두 분이 다 올해가 백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 분은 돌아가시고 나서, 또 한 분은 태어나시고 나서 백년이 되었다. 여기 용정 땅의 인연이 참으로 도타운가 보다.

광복절이 다가온다. 저기 일송정 푸른 솔이 새삼 더 푸르러 보인다.


# 최시선 수필가 프로필

▶월간 문예사조 수필 등단
▶CJB 청주방송 제5회 TV백일장 수필 장원
▶한국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청주문인협회 부회장
▶저서 '청소년을 위한 명상 이야기', '학교로 간 붓다', '소똥 줍는 아이들' 수필집 '삶을 일깨우는 풍경소리'
▶진천 광혜원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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