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 (2003) / movie.daum.net

기원전 710년쯤. 칸다울레스 왕이 다스리는 리디아 왕국(현재 터키 동부)에 왕실의 양을 돌보는 기게스(Gyges)라는 목동이 있었다. 어느 날 지진이 일어나 땅바닥이 갈라지면서 깊은 동굴이 생겼다. 기게스는 호기심에 동굴로 들어가 그곳에서 금반지를 낀 거대한 시체를 발견했다. 그는 반지를 빼 가지고 나와 손가락에 끼어보았으나 너무 커 거시기에 끼었더니 잘 맞아 늘 끼고 다녔다. 우연히 반지를 이리저리 돌려 봤더니 왼쪽으로 돌리면 투명인간이, 반대쪽으로 돌리면 원상태가 됨을 알게 되었다. 투명인간이 될 수 있다니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었다. 어느 날 기게스는 양의 사육 상항보고를 위해 입궐했다. 당연히 반지를 거시기에 끼고 말이다. 다른 지역에서 온 목동과 기다리는 사이 슬그머니 반지를 왼쪽으로 돌렸다. 잠시 후 " 어!, 갑자기 기게스가 사라졌네. 어디로 갔을까?" 하며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투명인간이 됐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였다. 흑심이 발동했다. "왕국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왕비를 겁탈해보자" 드디어 실행에 옮겨 성공했고 칸다울레스까지 살해했다. 그리고 왕비와의 결혼에 이어 왕비가 수치심에 자결하게 만든 뒤 왕조를 차지했다.

이 반지를 일컬어 '기게스의 반지(Ring of Gyges)'라 한다. 이 반지를 끼고 좌 클릭하면 투명인간이 되어,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신비의 힘을 발휘하는 마법의 물건이다. 행위 결과에 대해선 옳고 그름을 따질 필요가 없다. 누구도 행위자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기게스의 반지'는 범죄사회학에서 낙인론(烙印論:Labeling theory)의 전형적인 예다. 사회제도나 규범을 근거로 특정인을 일탈자로 인식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은 결국 범죄인이 되고 만다는 이론이다. 낙인론의 역설적 표현으로 보자면 '규범에 의거해 너는 일탈행동을 했기 때문에 범죄인이다'라고 낙인이 찍히지 않으면 자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범죄인이 아니다. 기게스는 천인공노할 범죄행위를 저질렀지만 역모죄가 성립되지 않았다. 투명인간이어서 누구도 그의 범죄행위를 볼 수 없어 범죄인 낙인을 찍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죄 값을 물을 수 없었다는 얘기다.

기게스의 반지를 끼고 악행을 일삼는 인간들이 참 많다. 정치인, 특히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지배자들이다. 이들은 합법적으로 주어진 권력을 마치 '기게스의 반지'로 인식하고 있다. 마치 마법의 힘을 발휘하는 기게스처럼 말이다. 그러니 무소불위가 가능할 정도로 권력을 휘두른다. 심지어 말 한마디로 나라가 움직일 정도다. 최고 권력자가 옳다면 나머지 그 수하들은 모두 옳아야 한다. 우리나라 권력자들의 위계서열만큼 확실하고 강건한 나라는 없을 것이다. 권력자들의 손발이 모두 같은 패거리이기 때문일까?

기게스는 '반지'를 끼고 투명인간이 되어 추잡한 짓을 통해 역성혁명을 일으켰다. 권력자들은 권력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받고 마구 권력을 휘두른다. 권력자들 근본에도 양심이 들어 있어 간혹 그들의 행위에 통제가 따르기도 하지만 그리 될 확률은 너무 낮다. 권력을 쥐고 있는 인간은 양심 이전에 욕심(권력욕)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정된 권력 소유 기간 역시 권력 향유를 위한 더 강력한 마법의 힘을 발휘한다. 휘두르는 권력은 위임받은 권력을 훨씬 초과한다. 팔뚝에 두른 '완장의 힘'이 폭발적으로 발휘되는 셈이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권력은 휘두르는 권리와 힘이 아니다. 권력을 갖지 않은 백성들과 나누는 정치행위다. '權'에는 '권리'는 물론 '저울이나 저울추'란 의미가 포함된다. '저울이나 저울추'는 무게의 균형을 맞춤에 의미가 있다. 그러니까 '권력'이란 남을 지배하거나 복종시킬 수 있는 권리와 힘을, 권력을 갖지 않은 사람들과 균형 있게 나눔을 뜻한다. 그러나 독점적 권력 소유에다 권력 소유의 정당성이라는 명분 때문에 백성들은 그들의 권력 행위에 항변조차 할 수 없다. 심지어 당하기 일쑤다. 과연 권력을 나눠 받은 백성들이 얼마나 될까? 나눠받은 권력은 어느 정도일까? 백성은 '기게스의 반지'에 눈멀고, '권력의 정당성'에 속아 하마 벌써 그저 그러려니 하고 산다. 아니 까마귀 노는 곳에 가지 않겠다는 백로의 심정이 더 옳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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