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종완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관련 사진 / 클립아트 코리아

안성 인근에 있는 수덕산을 다녀왔다. 중복 더위를 피해 계곡으로 찾아든 가족들의 모습이 정겹고 행복해 보인다. 초입부터 급경사가 만만찮아 산행이 고단했다. 진땀이 흐르고 들숨과 날숨이 가빠졌고 눈에 초점이 흐려질 만큼 기력이 쇠했음에 경악했다. 뒤 따라오는 부부에게 나약한 체력을 보이고 싶지 않은 태도도 기력 소진에 한몫했다. 숨이 막혀올 무렵 '살면서 가장 슬픈 일은 하늘이 준 나이를 다 못 살고 도중에 죽는 것이다'는 말이 스치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

산행을 포기할까 망설이다 등산로 양옆에 설치된 밧줄의 힘을 빌려 쓰며 산 중턱쯤에 올라 의자에 파김치가 된 몸을 기댔다. 가쁜 숨을 돌릴 즈음 석암사에서 스님의 염불소리가 나지막하지만 청아하게 들려온다. 염불은 스님이 본질을 찾고 만나는 시간이고 업에 충실한 구도(求道)의 정수(精髓)다. 사람으로서 차마 해서는 안 될 일과 차마 하지 않으면 안 될 일들을 분별없이 살아온 나에게 그릇된 의식을 깨우려는 산사의 죽비가 어깨를 내리치는 느낌이 들었다.

산행의 힘듦과 버거움을 버티고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서 산 아래를 굽어보며 와 닿는 느낌과 생각들은 정금(正金) 같이 귀한 시간이 주는 선물이다. 깨움이란 본성을 알고 그 안에 머무르는 삶을 사는 것이다. 진짜 본성은 시련의 와중에도 흔들림이 없다.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일이 지나치게 버거우면 우리는 미래를 회피한다. 장석주 작가는 "함부로 겨울이 되지 마라. 매일 변해야 얼어붙지 않는다. 매일 변하되 쉽게 결정짓지 마라. 겨울의 그늘 속에서 쉽게 생을 단정 짓지 마라."고 말한다.

하산 길을 잘못 들어 한참 가다 뒤돌아 나왔다. 이정표를 살피지 못하고 휘리릭 넘겨 내려오다 방향을 잃어 시간을 허비했고 힘을 뺐다. '산다는 것은 바로 이 순간에 온전히 집중해야 하는 일'임을 망각하고 사는 내 일상이 드러나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 활이 당긴 무수한 화살들은 기어이 내 가슴을 찾아온다.'는 문장에도 감응한다. 살다보면 치명적인 인생길로 들어서 일상이 지옥이 되기도 한다. 길을 잃은 뒤 자신이 처한 불확실성을 참아내는 법, 역경을 견디고 이겨내는 법을 배우게 해주는 것은 지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천천히 살며 오직 삶의 본질만 마주하고 삶이 내게 가르쳐준 것 중에서 배우지 못한 것은 없는지 살펴보기 위해서, 마침내 죽게 되었을 때에야 제대로 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지 않기 위해서 나는 숲으로 갔다."고 말한다. 사유와 산행은 한 통속이다. 산행은 삶의 수평을 맞추고 내적 가치의 평형을 유지하고 새로운 의식을 찾기 위한 사색의 시간을 아낌없이 내준다.

이종완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사람답게 사는 바탕은 끊임없이 생각함에 있고, 늘 새롭게 생각함 속에서 진실한 삶이 나온다. 삶을 영혼이 마비된 것처럼 무감각하게 사는 사람은 파렴치한(破廉恥漢)이 되기 쉽고 치욕적인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일상이 불안하고 불행하다고 삶에서 도망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산다는 것은 바로 이 순간에 온전히 정성을 다하는 일이다. 살아 있다면 그 살아 있음에 기뻐하고 지금에 감사하며 살 때 지금이 삶의 근본이 되고, 지금이 삶의 중요한 구심점이 될 때 삶은 여유롭게 풀리기 시작하는 것이 세상이치다. 매일을 다르게 살 수 있고 다른 내일을 상상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살아가는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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