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 교수의 역사에 비춰보기] 윤진 충북대 사학과 교수

제72주년 광복절인 15일 청주일원에 하루 종일 산발적인 비가 내린 가운데 한 아파트단지에는 태극기 게양이 저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심한 눈·비와 바람 등으로 태극기 훼손이 우려되는 경우에는 태극기를 달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김용수

또 한 번의 광복절이 지났다. 14일에 있었던 청와대의 독립유공자 및 유족과의 오찬 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독립유공자 3대까지 합당한 예우를 받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당연한 일이고, 옳은 일이다. 오히려 이런 성의 표현이 늦어진 감이 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8월 15일 즈음이 되면 독립유공자에 대한 예우를 강조하기 보다는 '광복절'이 아니라 '건국절'을 제정하자는 주장과 그에 대한 반박이 주로 뉴스에 나오고, 그것을 보면서 혀를 차던 일이 많았다. 그렇기에, 원칙을 따르는 일이고 당연한 일이었지만 문대통령의 발언이 새삼 반가웠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았던 나라나 민족은 무수히 많았고, 독립과 광복 역시 여러 번 있었다. 그 중에 어렵고 긴, 엄혹한 시절을 보낸 것으로 따지면 만만치 않은 이들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메세니아 인'이 그들이다. 메세니아 인들은 그리스의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남서쪽에 살던 사람들이었고, 기원전 8세기 중후반에 19년이라는 긴 전쟁 끝에 옆 나라인 스파르타에 정복되었다. 메세니아를 정복한 스파르타 인은 이들을 모두 노예처럼 대우하였다. '헤일로타이'라는 신분을 준 것인데, 어떤 고대 역사가는 이들이 '자유민과 노예사이'에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즉 스파르타는 정복한 메세니아의 모든 땅을 나누어 스파르타 시민들에게 주고, 그 땅들에는 헤일로타이 다섯 가정씩을 부속시켰다. 그리고 경작하여 나온 소출의 절반을 자기 땅 주인인 스파르타 인에게 바치도록 한 것이다.

스파르타 인들은 이제 자신들의 국가에 맞먹는 땅과 주민을 노예처럼 대우하는 대가로 자신들도 그 상황에 얽매이게 되었다. 언제 메세니아 인의 반란이 일어날지 알 수 없으니, 모든 스파르타 남성들은 직업 선택의 자유도 없이 모두 전사가 되어 군사훈련을 어릴 때부터 받아야 했던 것이다.

'300'이라는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스파르타는 엄격한 군사훈련과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요받아 왔다. 당연히 메세니아 인도 당장 기원전 7세기 중반에 봉기하여 17년 동안 스파르타와 전쟁을 벌였다. 하지만 다시 한 번 패하게 된 메세니아 인들은 기원전 369년에 이르기까지 거의 300년간 스파르타의 가혹한 지배를 인내해야 했다. 스파르타 인들은 메세니아를 지배하고 있던 기간 내내, 매년 가을이 되면 메세니아와의 전쟁을 새롭게 선포하는 의식을 치렀다. 반항적인 메세니아 인이 있으면 전쟁 중이라는 명분을 대고 즉석에서 살해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메세니아 인들은 300여년이 지나도록 독립의 꿈을 잊지 않았고, 기원전 371년 스파르타가 그리스 북방의 강국 테바이와의 전쟁에서 대패하자 다시금 봉기하였다. 그리고 패주하는 스파르타 군을 추격해온 테바이의 장군 에파메이논다스의 지원을 받아 요새를 짓고 독립의 기틀을 마련했다. 여기까지는 역경을 딛고 일어선 교훈적 이야기였으나, 그 이후 메세니아에서는 권력을 둘러싼 정쟁이 자주 발생하였다. 그리고 스파르타의 눈치를 보거나, 때로는 일부 정파가 스파르타와 손을 잡고 권력을 잡으려는 시도도 종종 있었다. 여기에 대해 고대의 역사가 폴리비오스는 이렇게 말했다. "메세니아가 국가를 계속 보전하기 위해 유일하게 바라야 할 것은 에파메이논다스가 충고했던 것처럼 어떤 상황에서든지 모든 일에 한마음이 되어 전심전력으로 서로 협조하여 일을 풀어 나가는 것이다."

윤진 충북대 사학과 교수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일제의 강점에서 독립한지 70년 남짓 밖에 되지 않는다. 친일 행각에 대한 규명과 단죄도 완벽히 마무리되지 않았고, 독립유공자에 대한 조사와 예우도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더 늦기 전에 힘써야 할 일이다. 대통령의 약속이 철저히 지켜지길 바라마지 않는다. 더불어 친일 행각에 대한 우리의 기억도 흐려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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