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광태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자료사진 / 클립아트코리아

우리 사회는 이른바 전방위적 '갑질 논란'으로 마치 한 여름 가마솥 열기만큼이나 사회적 공분으로 들끓고 있다. 이 같은 사회 현상을 보면 과연 우리가 자유와 평등을 기본 가치로 삼는 민주 사회에 살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까지 한다. 사회적 관계가 힘 있는 자의 무제한적 권리와 힘없는 자의 무제한적 의무로만 규정된다면 사회적 안정과 개인의 인간적 존엄이 지속되기 어렵다. 어느 누구도 혼자의 힘만으론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자. '각자 도생'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고 착각일 뿐이다. 씨앗은 흙 덕분에 싹을 틔우고, 고기는 물을 만나 숨을 쉰다. 산천초목도 모두 땅에 의지해 자란다. 세상 어디를 둘러봐도 허공에 뿌린 내린 풀이나 나무는 없다. 이렇듯 누군가의 덕택 위에서만 온전히 생존할 수 있다.

우리 신체 역시 마찬가지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이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법이다. 이가 아무리 중요한 노릇을 해도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려 그 기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는 이를 떠받들고 감싸주는 잇몸이 있어 그 역할을 다 할 수 있다. 인간관계는 한자 '人'의 의미에서도 그 지혜를 터득할 수 있다. 오른쪽에 있는 작대기가 왼쪽 작대기를 지탱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지탱해주는 오른쪽 작대기를 없애면 당연히 왼쪽 작대기는 쓰러지고 만다. 하지만 기대고 있는 왼쪽 작대기를 없애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오른쪽 작대기까지 쓰러진다. 자신이 지지하고 있다고 생각한 상대가 알고 보니 자신을 보호해 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은 서로가 '덕분'일 따름이다. 이것이 변함없는 삶의 이치다. 중소기업이나 사회적 약자는 부당한 횡포나 착취의 대상이 결코 아니다. 다만 기대고 의지할 동반자이다.

'논어'에 이르기를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도 베풀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고 했다.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은 다른 사람도 마땅히 하기 싫어할 것이기 때문에 내가 원치 않는 일을 남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대학'에도 비슷한 논지의 혈구지도(?矩之道)라는 말이 있다. '혈(?)'은 잰다는 뜻이고 '구(矩)'는 잣대를 의미한다. 내 마음을 잣대로 삼아 타인의 마음을 재고, 나의 심정을 기준으로 삼아서 타인의 처지를 헤아려주는 사람대접의 자세가 바로 혈구지도이다. 이처럼 주종관계의 봉건적 신분 질서가 확고했던 그 옛날에도 신분적 '갑질'을 경계하고 고발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잠재적으로만 '甲'일뿐이고, 상대적으론 항상 '乙'일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나보다 바로 한 단계 더 높은 강자는 얼마든지 있다. '갑질 문화'를 바로 잡을 인식의 대전환이 긴요하다. 인간은 피차 의지하고 도우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일 뿐이다. 남에게 손해를 입히면 결국 나에게 손해가 되고, 권세에 의지하면 재앙이 뒤따른다. '당신이 없으면 내 인생은 추울 것이다. 당신이 내 곁에 있기에 내 인생이 따뜻하다. 술의 향기는 백리를, 꽃의 향기는 천 리를 그리고 사람의 향기는 만 리를 간다고 했다(酒香百里 花香千里 人香萬里). 인간을 도구적 수단으로 대하는 오만함을 버리고 겸손하자. 모든 인간을 존엄한 '인격'과 '목적' 그 자체로 대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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