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몇 년 전부터 한산하던 도시의 일부 건물에 사람들이 부쩍 붐비고 있다. 사람들을 유인하기 위해 새로 들어서는 건물도 있다. 다름 아닌 영화관. 과거에는 한 영화관에서 일정기간 동안 한 종류의 영화를 상영했다. 요즘 영화관은 수개의 상영관을 마련해 다양한 영화를 상영한다. 어느 영화관은 아예 상영관의 전부 혹은 대부분을 특정 영화만 상영한다. 의도적 흥행조작이 분명하다. 영화는 대중매체로서 막강한 영향력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대리효과, 꿈과 희망을 주는 등 다양한 형태로 삶에 영향을 미치는 데다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동시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영화감상'을 취미로 여겼다. 이젠 생활의 일부다. 영화관이 아니더라도 TV. 인터넷, DVD 등을 통해 쉽게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점 또한 생활 속의 영화를 만들었다.
흥행에 성공한 영화를 '블록버스터(blockbuster)'라 한다. 'blockbuster'는 '많이 팔린 책, 많이 본 영화'를 말한다. 'block'은 '시가지의 구획 단위'를, 'buster'는 '파괴자, 폭탄'을 뜻한다. 원래 'blockbuster'는 제2차 세계대전 때의 폭탄 이름이다. 영국군이 독일 공격 때 사용했던 4,5톤짜리 폭탄으로, 한 번 폭격으로 시가지의 한 구역을 몽땅 파괴하는 위력을 지녔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얻었다. 지난 1975년 '조스(Jaws)가 상영됐다. 전 세계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가히 흥행수입이 4,5톤의 폭탄에 버금갈 정도였다. 할리우드에서 이런 영화에 별칭을 주고 싶었다. 폭탄에 비유해 '블록버스터'가 선택되었고 '조스'가 첫 영예를 얻었다. 북미에서는 연 1억불 이상을, 세계적으로는 4억불 이상의 수입을 올린 영화를 칭한다.
언제부턴가 영화를 개봉만 하면 대부분 대박이다. 막대한 흥행수입을 올린다. 개봉 며칠 만에 백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소식을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다. 전략적 홍보나 막대한 비용이 투입된 광고 등이 대박의 한 요인이지만 영화가 관객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분명하다. 과거에 영화관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당시 사람들이 영화를 싫어하던 것도 아닌데 왜 영화 관객이 갈수록 늘어 'blockbuster'로 만들고 있는가? 유명 배우 캐스팅, 영화 제작 기술 발달, 컴퓨터 그래픽 사용 등도 하나의 원인이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강요된 희생양(scapegoating)과 자발적 엑소더스(exodus)'다.
'강요된 희생양'은 사회심리학적 용어로 정치 권력자들이 은밀히 수행하는 고도의 대중 지배 수단을 일컫는다. 권력자의 권력 행위에 법적이든, 사회 통념적이든 걸림돌이 생겼을 때 대중의 눈과 귀를 막는 방법이다. 정치의식이나 관심이 많은 사람들을 일정기간 동안 스포츠, 연예, 먹거리 등 폭발적 시청각의 흥밋거리 등을 제공함으로써 정치로부터 외면이나 무관심을 유도한다. 정치권력에 대한 왈가왈부의 장과 소통의 기회를 박탈하며 정신을 분산시킨다. 관심 돌리기 술책이다.
'자발적 엑소더스'는 권력자의 권력 행위가 극히 불합리하다고 판단할 때 스스로 그 상황에서 잠시 또는 일정 기간 동안 탈출함을 뜻한다. 어느 언론을 보면 곧 전쟁이 나고 나라가 망할 것 같다. 경제도 추락하는데 날개가 없다. 권력 행위는 마음에 들지 않고 시쳇말로 왕짜증이다. 언론 접하기 자체가 스트레스다. 신문과 뉴스를 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겠는가? 두들기고 갈기고 찌르고 벤다. 욕을 퍼붓는다. 부수고 파괴하고 심지어 죽이기도 한다. 대붕(大鵬)이 되어 물결을 3천 리나 튀게 하고 9만 리를 올라 날기도 한다. 영화를 통해서 배우가 되어 대리 효과를 마음껏 누린다.
영화는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종합예술임은 물론 오락 기능을 지닌다. 이 부가적 오락 기능이 문제다. 오락이 '쉬는 시간에 각종 방법으로 기분을 즐겁게 전환하는' 뜻을 지녀 '강요된 희생양과 자발적 엑소더스'를 부추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는 고도의 수단을 통해 국민을 조종하는 기술이며, 현대인은 아직도 송곳에 눈이 찔린 노예다. 정치 권력자들은 혐오스런 자신들의 정치권력 행위를 숨기기 위해 무언가 희생양을 만들고, 이런 정치권력 행위에 염증을 느낀 백성들은 똥이 싫어 스스로 탈출한다. 참!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