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박상준 대기자 겸 논설실장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차관과 최성락 식품의약품안전처 차장이 21일 오후 충북 청주시 오송읍 식약처 브리핑룸에서 살충제 계란 유통량 추적조사와 인체 위해성 평가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17.08.21/ 뉴시스

삶은계란을 보면 여행이 떠오른다. 소풍을 갈때도 배낭에 꼭 들어있는 간식이 삶은계란이었다. 학창시절 기차여행도 마찬가지다. 사이다 한병에 찐계란 대여섯개 싸고 김밥 한줄이면 최고의 호사였다. 한국인들에게 '계란'은 단순한 먹 거리 이상이다. '계란 탁 파 송송'이라는 말은 듣기만 해도 군침이 흐른다. 라면 끓일 때 필수코스이기 때문이다. 그토록 오랫동안 계란을 먹어왔어도 단 한번도 계란의 유해성을 의심해 본적이 없다. 그런데 지금은 불안하다. 언론은 계란 앞에 '살충제'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살충제 계란'은 명칭부터 섬뜩하다. 계란의 유해성이 우리사회의 이슈로 등장하면서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HACCP(해썹·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이다. 해썹은 식품·축산물의 생산·유통과정에서 위해 요소를 차단해 소비자에게 안전하게 공급하는 시스템이다. 이 때문에 믿을만한 먹거리의 상징이지만 이번 살충제계란을 통해 안전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기존 해썹 농장 29곳에서 살충제 오염이 확인된 것이다. 해썹 인증을 받은 프리미엄 계란을 비싸게 구입해 먹은 소비자들은 황당함을 넘어 사기당한 기분이 들 것이다.

그런데 식품의약품안전약처가 새로운 사실을 뒤늦게 발표했다. 피프로닐에 가장 많이 오염된 소위 살충제 계란을 매일 2.6개씩 평생을 먹어도 인체에 문제가 없다고 밝힌 것이다. 친절하게 개수까지 밝혔다. 3~6세는 37개, 성인은 126개를 먹어도 한 달 정도 지나면 몸 밖으로 배출된다는 것이다. 발표내용이 사실이라면 계란만 먹고 살아도 사람의 몸에는 이상이 없는 셈이 된다. 이런 내용을 왜 '에그포비아'(계란 공포증)라는 말이 나올 만큼 계란에 대한 불신이 고조된 상황에서 발표했는지 궁금하다. 소비자들의 불안과 불신을 해소시키기 위한 것은 좋지만 사실관계가 명확해야 한다.

역시 의료계가 정면으로 반박했다. 장기 추적 연구결과가 없는 상황에서 식약처가 적정 계란 섭취량을 설정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장기적으로 섭취한 사례에 대한 연구논문 또는 인체 사례 보고가 아직 확인되지 않은 시점에서 살충제 성분의 일종인 피프로닐에 오염된 계란을 연령대별로 아무리 많이 먹어도 위험하지 않다고 단정한 식약처 발표는 너무 섣부른 대응이었다는 비판이다. 의사협회는 "살충제가 몸에 해롭다는 점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정부가 왜 저렇게까지 수치화한 내용을 발표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살충제 계란 파문을 보면 정부가 스스로 불신을 자초했다는 것을 알수 있다.

박상준 대기자 겸 논설실장

성균관대 SSK위험커뮤니케이션연구단은 지난 4월 '우리는 얼마나 믿을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가'라는 주제로 한국 사회 신뢰 수준을 측정하는 국민 인식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결과 우리 사회에 심각한 재난·재해 등 위험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가장 믿는 대상은 가족(57.1%)이었다. 하지만 가장 신뢰도가 낮은 대상은 의외다. 바로 정부(28.1%)였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팽배한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계란은 죄가 없다. 살충제 계란에 대한 죄를 묻는다면 식약처, 농축산부, 관련 농가 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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