巧 取 豪 奪

[공교할 교] [취할 취] [호걸 호] [빼앗을 탈]

교묘한 수단이나 강력한 힘으로 남의 재물을 빼앗음


지루한 여름비가 계속 내렸다. 그러더니 어느덧 저녁에는 제법 청량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마도 가을이 성금 오려나보다. 흔히 가을을 思索(사색)의 계절이라 한다. 더위에 지쳤던 몸과 마음이 회복되고, 시원한 바람에 정신이 들면서 냉정한 이성이 작동하기에 가을은 사색하기 참 좋은 시기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런 저런 생각들. 문득 옛 친구가 생각에, 지나간 첫사랑의 아련함에, 회한과 영광의 시간 속에 빠져들다가, 앞으로 펼쳐질 자신의 미래에 침잠하게 된다. 이러한 사색의 片鱗(편린)들이 퍼즐조각처럼 맞춰지다보면 자신 삶의 회고와 전망이 그 안에서 이루어지고, 이것이 자아성찰과 이어지면서 보다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게 아닐까?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까? 어떤 삶이 진정 행복한 것일까? 나는 지금 행복하다 확언할 수 있을까? 머리가 복잡하다. 결국 삶은 혼자서 살 수 없고, 혼자서는 행복해질 수도 없으며, 혼자서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는 내가 무언가 부족해보이기도 한다. 魏晋南北朝(위진남북조) 시기의 유명한 화가 顧愷之와 관련된 고사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顧愷之의 兒名(아명: 어렸을 적 이름)이 虎頭(호두)였다. 당시 사람들이 그를 재주가 뛰어나고, 그림을 잘 그리고, 가장 天眞(천진)하다고 하여 才絶(재절: 재주가 뛰어남), 畵絶(화절: 그림이 뛰어남), 痴絶(치절: 천성이 뛰어남)을 갖춘 三絶(삼절)이라 불렀다. 이에 그에게 "痴虎頭"라는 별명이 생겼다.

한 번은 자신의 그림 한 폭을 족자에 끼우고, 종이에 글자를 써서 잘 봉인한 뒤 大官(대관) 桓玄(환현: 정치가, 군사가, 丞相(승상)까지 역임했으며, 예술에도 높은 식견이 있었다.)의 집에 두었다. 평소 顧愷之의 그림을 좋아했던 桓玄이 족자 뒤로 그림을 빼서 가져가 버렸다. 顧愷之가 족자는 멀쩡한데 그림이 없는 것을 보고는 뛰어난 그림의 사람은 神仙(신선)으로 변해버린다고 생각하였다. 宋代(송대) 蘇東頗(소동파)가 이 사건을 소재로 「차운미시체제이왕서발미」에서 "교묘한 수단으로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은 이전부터 있었는데, 痴虎頭처럼 웃을 사람 누구인가?(巧偸豪奪古來有, 一笑誰似痴虎頭)"라는 시를 지었다. 이 말은 桓玄이 권세를 등에 업고 교묘한 방법으로 훔쳐갔지만 顧愷之가 너무나 천진스러워 이를 잘못 알았다는 의미이다. "巧偸豪奪"을 지금은 "巧取豪奪"로 쓴다.

배득렬 충북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桓玄이 顧愷之를 속이고 그의 그림을 騙取(편취)한 것은 분명 큰 잘못이다. 이 대목에서 훔쳐가 桓玄이 행복했을까? 자신의 그림 속 사람이 신선이 되었다고 하면서 껄껄 웃는 顧愷之가 행복했을까? 남 탓하고 욕하는 것보다 천진스럽게 웃어넘기는 고개지야말로 진정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蘇東坡는 顧愷之를 참 좋아했는가보다. 만일 두 사람이 한 시대에 같이 살았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서로 어울려 말동무도 하고, 술도 마시면서 한 평생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며 살았을 것이다. 요즘, 즐거운 일이 별로 없다. 그래도 살아가야 할 삶이라면 웃으며 살자. 그래야 행복하니까? 顧愷之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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